2001년 2013년, 2014년 이어 올 1분기 상장 0개···앞서 3번 모두 코스피 IPO 최저 시기
코스피 상장, 코스닥보다 시장 상황에 민감···최경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코스피 상장 무리했다는 지적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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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IPO시장도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기업의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IPO시장에 부는 찬바람은 코스닥보다 코스피에서 한층 매서운 모양새다. 코스피에 상장할만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도 있지만 4~5년 전 한국거래소가 지주사 전환을 위해 무리하게 코스피 상장을 추진한 데 따른 부작용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코스피 1분기 상장 無···올해, IPO 빙하기 되나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1분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이나 펀드는 단 한 개도 없다. 한국거래소가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래 1분기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한 번도 없었던 해는 2001년과 2013년, 2014년 등 총 3개 연도에 불과했다. 6년 만에 한 번 더 늘어난 것이다.

앞서 1분기에 코스피 상장이 전혀 없었던 3번의 해는 모두 코스피 IPO시장이 극도의 침체기에 빠졌던 시기다. 이 때문에 올 한 해 코스피 IPO시장 역시 급속도로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단 4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던 2013년 코스피 IPO 기록을 밑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코스피 상장이 기대됐던 기업으로는 SK바이오팜과 SK브로드밴드, 크래프톤, CJ헬스케어, 카카오뱅크, 현대카드, 태광실업, 호반건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SK매직 등이 꼽힌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말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예비심사 승인 유효 기간이 6개월이기에 올 상반기 안에 상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증시가 불안정해지면서 상장을 계속 밀고 나갈지를 놓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상장 추진 계획에는 아직 변동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코로나19 여파로 SK텔레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 상장을 1년 연기하겠다고 밝히면서 같은 SK그룹 계열사인 SK바이오팜의 IPO 일정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른 기업들의 상장도 불투명하다. 크래프톤은 신작 게임의 부진으로, 태광실업은 회장 별세 이후 올해 상장이 사실상 힘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나머지 기업들도 시장과 실적 예상이 안 좋은 올해 굳이 상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상장에 대해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기업은 카카오뱅크와 호반건설, 호텔롯데 등인데, 이들 역시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 초 상장도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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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IPO, 코스닥보다 더 추운 이유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코스피뿐만 아니라 코스닥에서도 역시 3월부터 상장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3월5일 메타넷엠플랫폼과 센코어테크가 상장 철회를 신청했고, 13일에는 LSEV코리아가, 18일에는 노브메타파마가 상장을 철회했다. 20일에는 SCM생명과학과 엔에프씨가 상장을 연기했고 26일에는 압타머사이언스가 상장 철회 신고서를 냈다.

그러나 코스닥에서는 상장 신청도 끊이지 않고 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전문 기업 솔트룩스가 3월9일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고 19일에는 바이오 기업 셀레믹스가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센코어테크는 20일 상장 철회 신청을 번복했고, 27일에는 임플란트 업체인 덴티스가 하나금융9호스팩과 합병 증권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코스닥 기업들의 상장 신청이 이어지는 이유는 벤처캐피탈 등 코스닥 주요 주주들의 투자 회수(엑시트) 압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업 상장 시 기존 보유 주식을 시장에 파는 ‘구주 매출’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상장을 철회했다가 다시 상장하는 쪽으로 선회한 센코어테크의 경우 외국계 벤처캐피탈인 블루런벤처스가 지분 23.65%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코스피에 상장하는 기업들은 상당수가 대기업의 계열사이거나 지배구조 개편, 경영 승계와 관련되어 상장을 하려는 회사들이다.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한 8개 기업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기업은 한화시스템, 롯데리츠, 현대오토에버, 현대에너지솔루션, 자이에스앤디 등 5개에 이른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관계자는 “코스피에 상장하는 대기업 관련 회사들은 상장을 통해 최대한 많은 공모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당장 상장에 목마르지 않기에 시장 상황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내부에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재임한 최경수 전 이사장이 당시 한국거래소의 상장과 지주사 전환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코스피에 상장할 만한 잠재적 기업들을 무리하게 ‘땡겨서 상장시켰다’는 비판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최 전 이사장이 임기 후반 들어 직원들에게 상장을 늘릴 것을 고강도로 압박했다”며 “당시 무리하게 상장을 유도했던 후유증으로 현재 코스피에 상장할 만한 기업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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