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세계의 공장’ 중국 등의 원유수요 급감
감산여부 놓고 갈등 사우디·러시아, 오히려 증산경쟁···美도 속수무책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국제유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미국의 ‘경기부양 패키지법안’에 대한 기대감으로 최근 상승세를 이어왔지만, 연초 60달러 안팎에 거래됐던 두바이유·서부텍사스유·브렌트유 등 세계 3대 유종들의 거래가격은 배럴(158.9ℓ)당 20달러대에 머무는 실정이다.

갑작스러운 유가폭락으로 국내 주요 정유·석유화학 업체들은 1분기 대규모 적자사태를 맞게 됐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원유를 구매해 확보하는데, 유가가 급락하며 정제·제품 마진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도 올 2분기 중반 이후부터 유가하락에 따른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고 내다보는 상황이다.

이 같은 유가폭락은 올 1월부터 본격화됐다. 중국 우한지역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창궐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내 공장가동률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원유수요가 높은 중국은 미국에 이어 줄곧 원유소비 2위를 기록했던 나라다. 수요가 줄고, 신종 전염병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리더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산유국들에 감산을 제안한다. OPEC은 사우디를 포함해 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14개 산유국들이 회원이다. 러시아·멕시코 등 비회원 산유국들과는 ‘OPEC 플러스’란 이름으로 협력을 맺고 있다. 사우디의 감산 제안을 두고 세계 3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반기를 들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공급을 조절해 유가를 방어하겠다는 사우디의 제안은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면서 “다만 러시아의 경우 나름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가 올 1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이 점쳐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감산은 곧 추가실적 하락의 요인이었다.

최소 사우디는 60만배럴의 감산을 제시했다. 이에 러시아가 응하지 않자, 30만배럴의 감산을 요구했는데 러시아는 재차 거절했다. 이 같은 승강이는 양국의 자존심 다툼으로 번졌고, 급기야 경쟁적인 증산계획을 발표하면서 원유가격이 급속도로 낮아지게 됐다.

자국의 셰일 원유 업체들의 위기감이 커진 상황에서 사우디와 러시아 간 증산경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이를 제어하기 위해 외교적 압박카드를 잇따라 선보였다. 양국은 이에 아랑곳 않고 추가 증설계획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괄목할만한 유가반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70% 셰일석유 개발업체들이 저유가로 인해 파산위기에 몰려 있는 상태기 때문에, 사우디·러시아의 증산을 막으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다만 양국 관계가 악화된 상태서 미국의 입김이 쉽게 작용하는 나라들도 아니어서, 미국은 국제적 공조를 바탕으로 한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에너지 시장의 안정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불붙은 감정을 진화하는 데는 다소 부족하다는 게 해당 매체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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