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적정 분양가 놓고 HUG와 수개월째 대치
공동주택 대신 오피스텔 선회 검토
전문가들 “HUG의 지나친 분양가 통제, 시장왜곡 우려”

서울 중구와 종로구 일대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의 주택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HUG의 분양가 통제로 시행사가 기존에 예정됐던 공동주택 대신 오피스텔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사진은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세운6-3-4구역 전경 / 사진=길해성 기자

서울 사대문 안에서 마지막 대규모 재개발 지역으로 불리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의 주택 공급 계획에 ‘빨간불’이 켜진 모습이다. 사업 시행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분양가를 놓고 수개월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아파트 대신 오피스텔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겠고 나서면서다.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부족한 서울 도심지에서 4600여 가구의 주택 공급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감을 나타냈다.

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세운지구의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세운지구 내에 조성할 예정이었던 공동주택을 비주거 시설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 구역은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6-3-3구역(714가구)·6-3-4구역(614가구)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 예정인 세운3-1·4·5구역(988가구) 등 세 곳(총 2316가구)이다. 변경안이 현실화되면 세 지역에 지어질 건물은 기존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오피스텔이나 오피스(업무 상업시설)로 바뀔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분양가 갈등으로 인해 촉발됐다. 한호건설과 HUG은 그동안 일반분양분에 대한 3.3㎡당 적정 분양가 산정을 두고 의견 차를 보여 왔다. 3-1·4·5구역에 공급되는 주상복합아파트 ‘힐스테이트 세운’의 경우 당초 지난해 6월 분양하려고 했으나 분양가 문제로 지금까지 분양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HUG가 일반분양가로 3.3㎡당 2750만원을 제시한 반면 시행사는 최소 3200만원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나머지 구역도 비슷한 상황이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한호건설이 시행을 맡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주요 사업지 현황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업계에서는 한호건설이 수익을 내기 위해 분양가 통제를 받지 않는 오피스텔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피스텔은 비주거 상품이어서 HUG와 분양가 협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세운지구 주변에 지난 15년간 아파트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HUG가 ‘인근 준공 사업장’을 분양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시행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아파트를 지어 수익을 못 낼 바엔 오피스텔로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호건설은 세운지구 내 나머지 구역에 대해서도 사업계획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대상 구역은 을지면옥과 양미옥이 포함된 세운3-6·7구역과 세운3-8·9구역이다. 당초 두 구역에는 오피스텔·근린생활시설·서비스 레지던스 등과 함께 공동주택 23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었다. 시공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부분 소형 오피스텔 위주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HUG의 지나친 분양가 통제가 시장 왜곡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HUG이 분양보증을 빌미로 분양가를 통제하는 건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는 행위다”며 “시장에서 결정되는 분양가 책정에 너무 직접적으로 깊게 개입하게 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들거나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등 시장의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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