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방위 ‘n번방 사건’ 긴급현안질의 전체회의 개최···여야, 정부 대책 일제히 비판
“2017년부터 줄기차게 경고됐던 문제”···“‘악마’ 조주빈·운영진·추종자 26만명 소탕해야”
국회 국민청원 1호로 상임위 상정됐던 ‘n번방’···심각성 인지 못하고 ‘딥페이크’ 규정만 추가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n번방 사건' 관련 긴급현안질의를 위한 전체회의를 실시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n번방 사건' 관련 긴급현안질의를 위한 전체회의를 실시했다. /사진=연합뉴스

미성년자 등에게 찍도록 한 성 착취 영상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유통·판매한 이른바 ‘n번방 사건’에 대한 국회의 법안 논의가 시작됐다.

해당 사건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들에 대한 참여인원이 25일(오후 4시 기준) 약 500만명(‘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260만9026명,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189만383명, ‘가해자 n번방박사,n번방회원 모두 처벌해주세요’ 56만2484명 등)에 육박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n번방 사건’에 대한 긴급현안질의 전체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련 정부기관들의 대책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웹하드 사업자 불법음란정보 유통방지 조치 불이행시 과태료 최대 5000만원 상향 ▲플랫폼 사업자 삭제 조치에 대한 위반 조치 강화 등 대책을 밝혔다. 또한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시정요구(삭제, 차단 등) 의무 법제화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대책과 ‘n번방 사건’에 대한 ‘늑장대응’ 등을 여야는 일제히 강력 비판했다.

최연혜 미래통합당 의원은 “(‘n번방 사건’은) 그간 국회 과방위에서 매년 국정감사는 물론 회의가 열릴 때마다 위험성에 대해 줄기차게 경고됐던 문제”라고 지적했고,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초부터 공론화된 문제였는데 국가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데 대한 국민적 분노가 있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은 지난 2017년부터 제기됐던 문제였고, 국정감사 등에서 공론화됐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지난 2018년 보완조치를 했다고 보고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이날 정부의 대책과 관련해서는 박대출 통합당 의원은 “2017년 9월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책의 재탕 수준”이라며 “지극히 땜질 처방으로 ‘제 2·3의 n번방 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n번방’의 운영자에 대한 엄벌, 약 26만명으로 추정되는 가입자 등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신상공개 등을 촉구했다.

박대출 통합당 의원은 “‘악마’ 그 자체인 주범 조주빈과 운영진에 대한 엄벌은 물론, 가입자들도 ‘악마 추종자’인만큼 26만명을 전수조사 해 악마 소굴을 소탕해야 한다”며 “(가입자들이)동영상을 구매하거나 공유하는 것 자체가 디지털성범죄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근거를 만들어서라도 스스로 탈퇴하고 이런 영상을 더 이상 유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의 정부에 대한 질타성 질의가 이어지며 전체회의는 산회했지만, ‘n번방 사건’ 관련 국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미 국회 국민청원 등으로 지난 3월 초 국회 상임위원회까지 열렸음에도 ‘졸속법안’을 만드는 것에 그쳤던 만큼 ‘지적질’만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n번방 사건’은 국회 국민청원 1호로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바 있다. 지난 1월 15일 국회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텔레그램 성범죄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수사, 수사기관의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강화 등 요구)이 올라왔고, 해당 청원은 홈페이지 개설 이후 처음으로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지난 2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지난 3월 3일 해당 청원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조항 중 연예인 등의 사진을 합성해 불법 영상물을 만드는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두도록 하는 등 일부만을 수정·추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당시 여야 의원들은 ‘n번방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부 의원들은 ‘놀이문화’ 정도로 치부하며 개인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의록에 따르면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나 혼자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 내 일기장에 내 스스로 그림을 그린단 말”이라고 언급했고, 김도읍 통합당 의원은 “기존 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지 않냐.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드나”라고 말했다.

정점식 통합당 의원도 “내가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이것까지 (처벌이) 갈 거냐”라고 지적했다.

해당 발언들이 알려지면서 여야 의원들은 법 조항 신설·추가 등 과정에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정의당 성평등선거대책본부는 ‘문제적 발언’을 한 의원들에 대한 사퇴·공천 취소 등을 촉구했고, 손솔 민중당 청년 비례대표는 이날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5명을 직무유기 혐의,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n번방 사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지금부터라도 ‘n번방 사건’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강화대책을 법제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의 경우처럼 국회가 굵직한 이슈에 함몰돼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뒷북’을 치지 않도록 보다 현안들을 세심히 챙기고, 국회 시스템적인 차원에서도 개선이 이뤄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통합당 관계자도 “국회에는 많고, 다양한 법안·청원 등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때문에 모든 것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변명이 돼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 청원의 경우 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문제인 만큼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n번방 사건' 관련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n번방 사건' 관련 국민청원.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