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럽발 입국자 예상치 넘자 무증상자 격리 등 정책 수정···“누구 의견 듣고 결정했나”
감염병 전문가 “정부가 우리 의견 듣지 않아”···‘미국발 입국자’ 조치, 현실 고려 어쩔 수 없는 대책 평가

공항에서 진단검사를 위해 이동하는 유럽발 승객 모습. / 사진=연합뉴스
공항에서 진단검사를 위해 이동하는 유럽발 승객 모습. / 사진=연합뉴스

국내 코로나19 확산 추세에서 해외 환자 유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유럽발 입국자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25일에는 미국발 입국자 대책도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애초 계획했던 공항 전수검사 자체가 무리였다며 현실적 대책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정부 내 손발이 맞지 않는 현재 시스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는 이날 0시 기준 전날에 비해 100명 늘어난 9137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추세는 일별 확진자가 100명 이하에서 증가하는 경향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추가 확진자 중 해외 유입 사례가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날 신규 확진자 100명 중 해외 유입 관련 사례는 5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유럽이 29건, 미주가 18(미국13)건, 중국 외 아시아가 4건이다. 내국인은 44명이다. 외국인은 7명이다. 누적 확진자 9137명 중 조사가 완료돼 해외 유입으로 확인된 확진자는 227명이다.    

이에 정부는 유럽발 입국자와 미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방역 대책을 순차적으로 내놓았다. 우선 정부는 지난 22일 0시부터 유럽발 입국자 전원에 대해 공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 24일 정책을 일부 수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 수정의 원인으로 예상치 못한 입국자 수와 공항 내 혼란 등을 지적하고 나섰다. 당초 정부는 하루 유럽발 입국자를 1200명에서 1300명 수준으로 예상하고 대기 시설 등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책이 시행된 첫 날인 지난 22일 유럽발 입국자는 1444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공항에선 유증상자와 무증상자가 장시간 한 공간에 모여 대기하는 등 방역상 위험한 모습이 노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지난 24일 오후 2시부터 유럽발 입국자 중 내국인 무증상자는 자가격리를 시행하고, 관할 보건소에서 입국 후 3일 이내 검사하도록 정책을 수정했다. 유럽발 입국자가 하루 14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증상이 있는 입국자부터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 같은 정부의 갈팡질팡 정책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감염병 전문가는 신랄한 비판을 제기했다. 이 전문가는 “당초 공항에서 유럽발 입국자를 모두 검사하겠다는 ‘전수검사’는 처음부터 무리수였다”라며 “제 주변에도 이 같은 정책을 자문해준 전문가가 없는데, 정부는 도대체 누구 의견을 듣고 이렇게 결정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항에서 하는 검사 절차나 소요 시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아무리 빨리 해도 하루에 1400명 이상 검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 전문가는 “그동안 정부가 현장이나 전문가 의견을 듣지 않고 정책을 결정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라며 “특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결정한 사항을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수정해 발표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태도 있었다”고 일갈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은 상급 기구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총괄하는 조직이다. 

그는 “24일 발표된 후속 조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무증상자는 자가격리 기간인 2주가 끝날 무렵 검사를 받아도 되는데 굳이 입국 후 3일 이내 받도록 한 것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정부는 전수조사가 금과옥조라고 맹신하는 것 같다”며 “현장은 너무 힘들고 특히 감염 위험이 높아지고 있어 정부가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정부가 이날 발표한 미국발 입국자 대책은 오는 27일 0시부터 시행된다. 대책의 핵심은 미국발 입국자 중 유증상자는 내·외국인에 관계 없이 검역소에 대기하면서 진단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검사 결과 양성으로 판정되면 병원 또는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해 치료를 받게 된다. 음성으로 나오면 14일간 자가격리를 하게 된다. 반면 입국 때 증상이 없는 내국인 및 장기 체류 외국인은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간다. 증상이 발생하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 같은 유럽발 및 미국발 입국자 대책에 대한 전문가들 의견은 다양한 편이다. 김우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4일 시행된 유럽발 추가 조치는 입국자들이 많은 데 따른 궁여지책”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시간 내 검사 결과가 나오는 현장검사 시스템을 공항에 구축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라며 “공항에서 신속하게 검사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항뿐만 아니라 다른 시설도 현장검사 시스템을 준비해 검사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제 코로나19 사태도 3개월째이므로 초기 방법만 고집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초기 유럽발 입국자 대책이 수정된 것은 쏟아져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감당하지 못했던 현실적 사유”라며 “입국자가 너무 많아 현장에서 근무하는 검역관이나 의료진 감염까지 우려될 정도”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미국발 입국자 대책은 현실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단순하게 미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 감소 효과도 있는 등 적절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미국발 무증상자 중 장기 체류 외국인은 2주간 자가격리를 시킨다고 하는데 격리할 시설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제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책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데 당초 전수조사는 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적 차원에서 결정한 문제가 있었다”라며 “향후 운영 과정을 지켜보며 효율성을 계속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