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성 자산 넘쳐나지 않고 일부업종 흑자도산 우려···대기업들 “유동성 공급이 가장 시급”
대기업 넘어갈 경우 중소기업 줄도산 불가피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증시 현황판 앞을 오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증시 현황판 앞을 오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100조원의 긴급구호자금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일각에선 대기업도 대상으로 해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대기업 지원이 오히려 절실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정부가 지난 24일 내놓은 지원 대책을 보면 100조원 중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에 대한 경영안정자금이 규모가 51조6000억원이다. 대기업도 해당 자금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대기업도 포함해 일시적 자금 부족으로 기업이 쓰러지는 것을 막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대기업 지원까지 필요 하느냐는 이야기를 하지만, 현 코로나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대기업라고 돈이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예를 들어 현대차는 부채를 빼면 현금성자산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자동차는 캐피탈을 통해 주로 팔기 때문에 현금화에 시간이 걸린다”며 “지금은 실제로 비상시국이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넘어가버리지 않도록 유동성 공급을 해서 어떻게든 버티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을 잘못해서 망하는 기업을 살려주는 개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라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같이 먹고 살고 있는 협력업체들도 줄도산하게 된다”며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라고 전했다.

대기업을 고객으로 둔 한 30대 중소기업 종사자는 “산업 구조 자체가 대기업하고 중소기업이 따로 먹고사는 게 아니다”라며 “대기업 지원하지 말라는 소리는 업계 속사정도 모르면서 밖에서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사태는 대기업은 물론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들에게도 절체절명 위기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 등 대한민국의 수출을 담당하는 주요 기업들의 해외 공장이 계속해서 멈추고 있다. 최태원 SK회장은 24일 새로운 안정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경영진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저신용도 대기업 회사채 사주거나 채권발행 시 보증 방식 효과적”

이번 조치로 일부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기업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부분은 역시 직접 혹은 간접적 유동성 확보와 관련한 것이었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신용도 안 좋은 대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해서 누가 사줘야 하는데 사주지 않고 그 상황에서 돈을 못 갚으면 흑자부도 나는 것”이라며 “신용도 낮은 회사 회사채는 정부가 선별적으로 사주면 일시적 자금 유동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항공업계 역시 유동성 확보와 관련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항시설 이용료 감면 등을 해주고 있지만 어차피 비행기가 못 뜨는 상황에서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출 자체가 없어진 상황에 고정비는 계속 나가기 때문에 유동성 공급이 가장 시급하다”며 “정부가 직접 돈을 주진 않더라도 회사가 채권발행하면 보증을 서주는 방식의 지원이 이뤄지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비상 중에 비상시국이다. 대한항공은 임원들이 위기극복을 위해 급여를 반납했고 아시아나는 직원들 무급휴직에 돌입했다. 이스타항공은 아예 셧다운 상태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IMF부터 금융위기 등등 다 겪어 봤지만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직원들이 휴직에 돌입한 기업들의 경우 정부의 직접적 지원이 이뤄지면 내수진작 효과 등도 노릴 수 있을 것이란 조언도 있었다. 한 대기업 인사는 “유급휴직을 해도 월급이 온전히 안나오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 긴급경영자금 투입을 해준다면 따로 돈 줄 것 없이 내수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재계에선 이번 100조 지원이 선심성이 아닌 효과성을 최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줄도산 사태를 막기 위해 더 적극적 재정투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불이 꺼지기 전에 다시 키우는 건 적은 노력으로도 되지만 완전히 꺼져버린 후 다시 붙이는 것은 힘들다”며 “지금 대기업들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 펀더멘탈 자체가 무너지게 되기 때문에 GDP의 10% 이상, 200조원 가까운 재정투입도 충분히 고려할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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