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가입자임에도 실업급여 못 받는 경우도
전문가 “수급요건 완화 및 고용보험법 개정 필요”

24일 오전 서울남부고용센터는 실업급여 신청자로 붐볐다.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24일 오전 서울남부고용센터는 실업급여 신청자로 붐볐다.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코로나19) 여파로 실업급여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하고도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업자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180일 미만 근무하거나 권고사직이 아닌 자진퇴사 처리된 경우다. 이러한 실업급여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완화하고 고용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실업급여 신청이 늘고 있다. 지난 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은 78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0억원(32%) 증가했다. 지난해 7월 기록한 역대 최대치(7589억원)를 뛰어넘은 수치다. 지난달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도 10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만7000명(33.8%) 늘었다.

이번 달 실업급여 신청 역시 늘고 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전화문의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남부고용센터 관계자는 “3월 실업급여 신청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정도 더 늘어났다. 최근에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며 “코로나19로 대면 접촉 조심스러워 하는 탓에 전화문의도 늘었다. 보통 상담 한 건 끝나고 나면 부재중 통화 7통 이상이 쌓여있을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업종별로 보면 관광업, 숙박업, 요식업, 병원 등 다양하다. 그리고 최근엔 코로나19로 일자리가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일용직 노동자들의 실업급여 신청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신청사유는 ‘인원감축’, ‘부서 폐지’, ‘권고사직’ 등 코로나19 영향이 큰 것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실업급여는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60%를 최소 한 달부터 최대 270일까지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실직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한다.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내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약 1370만명으로 취업자(2680만명) 중 약 51%가 가입돼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고용보험 가입자라도 자격요건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180일 미만으로 일하거나 사업주에 의해 자진퇴사 처리된 경우다.

음식점에서 4개월간 근무하던 이아무개씨(24·여)는 고용센터를 찾았지만 실업급여 신청에 실패했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80일 미만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최근 일하던 가게가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워져 폐업하게 됐다”며 “요즘 일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 실업급여 받으러 왔는데 안 된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호텔에서 9개월간 청소 업무를 담당해 왔다는 이아무개씨(56·남)는 최근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나왔다. 그러나 고용센터를 찾은 이씨 역시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퇴직 사유가 자발적으로 퇴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권고사직 처리해줄 것을 약속받고 퇴사했는데 막상 센터 방문해보니 자진퇴사로 돼있어 (실업급여) 신청을 못했다”며 “고용보험상실 수정신고 할 것을 안내 받았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와 같은 이유로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업급여 수급자격신청창구 직원은 “물론 노동자 말만 믿을 순 없지만 (이씨와) 유사한 경우도 꽤 있었다”며 “이분들은 어디로 신고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에 상실수정신고 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고용보험법상 노동자가 퇴사하면 사업주는 이 사실을 증명할 고용보험상실신고서 및 이직확인서를 사업장 관할 근로복지공단 지사로 신고해야 한다. 이때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 상실 이유, 즉 ‘퇴사 이유’를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 여부가 결정된다. 회사에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노동자들의 퇴사를 ‘자발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실업급여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선 수급요건을 완화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완화하고 기한을 연장하는 등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퇴직 사유를 임의로 기재하는 갑질에 대해 “퇴직 사유를 사업주가 아닌 노동자가 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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