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전 행장, 역대 최대 실적 불구 돌연 사퇴···성과 창출 부담 불가피
디지털금융부장·미래경영연구소장 등 경험 살려 디지털·글로벌 역량 강화 기대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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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행이 손병환 체제를 맞이했다. 현재 농협은행은 갑작스러운 CEO 교체로 내부 기강이 흔들리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손병환 농협은행장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손 행장은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취임 이후 다시 부각되고 있는 지배구조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대훈 전 은행장 못지 않은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손 행장은 그동안 농협은행이 핵심 전략으로 추진해 왔던 디지털 금융에 능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은행권의 극심한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손 행장은 디지털 혁신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추가로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등을 역임하며 축적한 글로벌 전략 수립 경험으로 농협은행의 약점인 글로벌 부문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훈 전 행장, 3연임 후 2개월 만에 사퇴···중앙회發 지배구조 불확실성 재부각

24일 농협은행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을 신임 은행장으로 선임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공식 임기는 오는 26일부터지만 손 행장은 별도의 취임식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농협은행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조직 불안정이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취임 이후 갑작스럽게 중앙회 임원들과 계열사 대표들이 대거 교체되자 농협 내에 전체적으로 이 회장의 무리한 친정 체제 구축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농협은행의 경우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이 새 임기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자리를 떠나게 돼 그 파장이 다른 곳보다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행장은 지난해 1조517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고 이를 바탕으로 농협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이전의 행장들은 농협의 전통에 따라 실적과 관계 없이 2년의 임기만을 수행해 왔다.

3연임 확정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농협에도 성과 중심의 평가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으나 이 전 행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다시 농협중앙회에 따른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이 부각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전 행장의 3연임은 차기 중앙회장 취임 때까지 임기를 유예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셈이다.

은행 안팎의 우려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손 행장은 이 전 행장에 못지 않은 실적을 창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 전 행장이 취임할 당시 6521억원이었던 농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이듬해인 2018년 1조2226억원으로 87.49%나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도 24.09%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손 행장이 이러한 농협은행의 급성장을 이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저금리 기조로 은행권 전체의 수익성이 급락하고 있으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부실의 위험도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농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1.54%로 전년 동기(1.65%) 대비 0.1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인하했기 때문에 수익성은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농협금융그룹/그래프=이다인 디자이너
자료=농협금융그룹/그래프=이다인 디자이너

◇디지털 금융 선두주자 손병환, 은행 핵심 사업 가속화 기대···글로벌 역량도 강화

손 행장은 1962년생으로 경남 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농업교육학과를 나와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농협중앙회 기획조정실 계열사지원팀장과 기획팀장 등을 거쳐 2015년에는 농협은행에서 스마트금융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어 농협중앙회 기획실장, 농협미래경영연구소장,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경영기획부문장 등을 역임했다. 농협중앙회 내에서 대표적인 전략·기획 전문가로 꼽힌다.

현재 업계는 손 행장의 디지털 금융 역량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은 최근 수년 동안 디지털 혁신을 핵심 전략으로 정하고 그룹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전 행장도 올원뱅크 전면 개편 및 독립 분사, NH디지털캠퍼스 확대 운영 등을 통해 디지털 혁신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 말에는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고객 가치를 실현하는 ‘디지털 휴먼 뱅크’로 도약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손 행장은 농협금융 내 디지털 금융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농협은행 스마트금융부장으로 있으면서 국내 최초의 오픈 API 상용화를 이끈 바 있다. 이후에는 KT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함께 국내 1호 금융보안 클라우드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때문에 손 행장이 이 전 행장의 핵심 사업을 축소시키거나 흔적 지우기에 나설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이 전 행장이 추진했던 디지털 혁신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협은행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글로벌 부문의 역량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기준 농협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6개국 7개소로 다른 은행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다. 농협은행과 함께 글로벌 후발주자로 꼽히는 KB국민은행(10개국 38개소)과 비교해도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손 행장은 농협중앙회 미래경영연구소장과 농협금융 사업전략부문장을 지내며 글로벌 사업전략 기획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미래경영연구소는 연구 업무뿐만 아니라 농협금융의 해외 사업 전략 관련 업무도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력은 농협은행장 후보 선정 당시에도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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