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경찰 신상공개 심의 전 “국민 알 권리” 주장하며 공개
“중대범죄로 공개” 여론 높아···“폭로주의 지양, 2차 피해 고려” 반론도

 

영장심사 마친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료채널 운영자 조아무개씨. / 사진=연합뉴스
영장심사 마친 텔레그램 성착취물 유료채널 운영자 조아무개씨. / 사진=연합뉴스

텔레그램 미성년자 성 착취(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아무개(26, 별명 박사)씨의 얼굴과 실명이 SBS 등 일부 언론의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이는 경찰이 24일 오후 2시 신상공개심의위원회 열어 조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하기 전 나온 것으로 옹호론과 신중론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SBS는 전날 밤 방송에서 조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조씨가 졸업한 대학과 전공, 성적, 교우관계, 조씨의 교내 활동 내용까지 구제적으로 언급됐다.

SBS는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했다”며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씨에 대한 신상 공개 요구 국민청원에 250만명이 넘게 동의(24일 오전 10시 기준)하고,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에도 170만명이 넘게 동의하고 있어 조씨의 신상공개를 옹호하는 여론이 비등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신상공개가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는 “언론이 분별력 없고, 오직 폭로주의만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는 “SBS는 국민의 알 권리와 피해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언론의 속보가 그 명분을 숙고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경찰이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곧 공개여부를 결정할 상황에서 불과 몇 시간 더 일찍 보도하는 게 우리 사회에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해자의 가족이 겪을 2차 피해도 숙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2013년 신상공개된 40대 성추행자 박아무개씨의 고등학교 2학년 자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 그는 아버지가 1심에서 유죄를 받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원룸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고유정씨의 사례에서도 고씨 가족 등에 대한 무분별한 정보들이 유포돼 경찰이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조씨가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신상공개로 n번방 피해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조씨의 가족들이 사실상 연좌제 같은 피해를 입게 되는 부분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알 권리는 개인의 식별정보 및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같은 다른 권리와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된다”며 “공개될 경우의 공공의 이익과 공개되지 않을 경우의 공공의 이익을 엄밀하게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경찰 심의위, 다수결로 신상공개 결정···“충분한 증거 필요”

경찰은 이날 오후 2시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경찰 내부위원 3명과 교수와 변호사 등 외부위원 4명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한다.

신상공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25조에 의해 유죄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요 등 요건을 갖추면 그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다만, 공개시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면 안된다고 규정한다.

조씨의 범죄 증거가 충분한 상황인 만큼, 알 권리와 공익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판단이 신상공개에 여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신상공개가 결정되면 조씨의 이름과 나이가 즉각 공개되고, 검찰로 송치할 때 마스크와 모자를 쓰지 않게 된다.

이날 조씨의 신상이 공개되면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가 된다. 이제까지 강력범죄를 저질러 신상이 알려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 전남편 살인 혐의의 고유정, 모텔 손님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장대호 등은 모두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상 조항에 의해 신상이 공개됐다.

한편, 우리나라는 이밖에도 체납자, 채용비위 행위자, 임금체불사업주, 산재보상금 부정수급자 등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요건에 따라 국가기관의 판단이 필요하고, 별도의 이의제기 절차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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