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를 외친 신천지, 그 중심에 선 ‘이만희’
HWPL·IWPG·IPYG 등 중심으로 대중적인 구호 강조
‘14만4000명’ 신도 확보 즈음 국제 무대로 적극 행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를 발생시킨 지 두 달여가 흘렀다. 확진자가 1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심각해진 국내 코로나 사태의 변곡점에는 뜻밖에도 한 종교단체가 있었다. ‘신천지’. 이 세 글자는 코로나19 확산과 더불어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신천지가 지난 36년 동안 급성장을 한 배경에는 ‘은밀한’ 선교와 ‘폐쇄적인’ 조직관리 등 비밀스러운 ‘신천지 커넥션’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e는 신천지의 최근 행보, 복잡하게 얽힌 ‘위장·유착단체’의 실체, 그리고 진화하는 신천지 세력화 등을 중심으로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하늘은 유달리 선명했고, 또 높았다. 2016년 9월 18일.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12만여 명이 관중석 위아래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메인 관중석 건너편으로 대형 태극기와 행사 주최 측 상징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참석자들이 입은 복장도 형형색색이었다. 메인 관중석 건너 정중앙에 모여 앉은 ‘1만 명’ 카드섹션 참가자들은 흰 티셔츠를 입었고, 그 좌우로는 12가지 색상 옷을 입은 이들이 마치 컬러 블록을 꽤 맞춘 듯 차례대로 앉았다.

행사 규모만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니었다.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파들이 내는 ‘소리’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그들은 연신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틈틈이 이어진 파도타기는 12가지 색의 물결을 일게 했다. 시시때때로 터지는 폭죽의 굉음도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지난 2016년 9월 18일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대표로 있는 HWPL이 주최하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평화대축제'에서 이 총회장(중앙 왼쪽 흰 양복 차림)이 '평화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튜브 캡쳐 화면
지난 2016년 9월 18일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대표로 있는 HWPL이 주최하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평화축제'에서 이 총회장(중앙 왼쪽 흰 양복 차림)이 '평화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 천지TV 유튜브 캡쳐 화면

‘12만 명 운집’ 스타디움에 등장한 한 사람

하지만 십만 인파가 숨죽이는 순간이 있었다. 한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경기장 주 진입로에 설치한 ‘평화의 문’으로 관중의 시선이 일제히 향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와 함께 한국 전통 기와를 인 팔작지붕 모양의 ‘평화의 문’이 열리자, 환호는 더욱 커졌고 분위기는 열광적이었다.

이만희(90)

지난 2016년 9월 18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사단법인 HWPL가 주최하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평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대표로 있는 HWPL은 지난해 9월까지 매년 이 행사를 열고 있다. / 유튜브 캡쳐 화면
지난 2016년 9월 18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사단법인 HWPL가 주최하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평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대표로 있는 HWPL은 지난해 9월까지 매년 이 행사를 열고 있다. / 천지TV 유튜브 캡쳐 화면

종교단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의 총회장인 그는 이날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일명 하세광) 대표로 소개 받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트레이드 마크 격인 새하얀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있었다. 그는 약간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한 손에는 HWPL 손깃발을 흔들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걸음과 함께 ‘와~’ 하는 함성은 더욱 강하게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고적대가 팡파르를 일제히 울렸다. 고적대장의 현란한 지휘를 받으며 그는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그의 뒤로 전통 복장을 한 군기병과 취조악단이 뒤를 이었다. 이윽고 이 대표가 메인 관중석 맨 아래에서 손을 치켜들자, 관중 반응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뒤로 ‘행사에 공감해 왔다’는 전직 해외 수반들과 NGO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이날 행사는 이 대표와 HWPL 등이 지난 2014년 9월 18일 ‘평화의 세계를 후대에 물려주자’는 취지로 연 종교대통합 만국회의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한 가족이며 평화의 사자들입니다. 우리의 목적 세계 평화를 성취합시다. 각국의 대통령님들과 각 종교인들에게 촉구합시다. 제정된 국제법 10조 38개항에 사인합시오. 이것이 하늘의 빛과 비와 공기같이 지구촌과 만민을 사랑하는 길과 생명이며, 참 정치와 참 종교이며 참 사랑과 평화입니다.

연설 대목마다 “와~”하는 함성이 기나긴 메아리로 돌아왔다. 십만 인파가 내뱉은 환호와 박수로 HWPL이 주최하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평화축제’는 이미 절정에 다다랐다.

‘평화축제’를 지켜본 스무살 ‘신천지 청년’

박형민(24)

그는 스무살이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HWPL 대표로 소개받으며 십만 인파의 환호를 받고 무대 중심에 서 있던 그날, 그도 그곳에 있었다. 형민씨는 이날 관중석을 빼곡 메운 인파와 마찬가지로 12가지 색상 옷 중 하나를 입고 있었다. 그는 12개 지역별 조직으로 구성된 신천지 지파 중 ‘베드로지파’(광주지역) 소속으로 이 행사에 참석했다.

십만 인파의 운집과 이만희 대표의 등장을 지켜보던 그의 머릿속에서 지나간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는 지난 2014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신천지 신도의 이른바 ‘포섭’ 대상이 됐다. 그해 3월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만난 남녀 대학생 한쌍은 형민씨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성경이 궁금하면 알려줄게요. 판단은 들어보고 그 다음에 해주세요.”

형민씨는 마침 성경에 관심이 많았다. 신앙으로서 관심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삶에 대한 해답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강할 때였다. 길에서 마주친 한 일행이 던진 말은 그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물론 그들이 ‘신천지’라고 안 것은 한참 뒤 일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신천지와 첫 만남 후 지난해 9월 ‘탈퇴처리’될 때까지 그의 일상은 온전히 신천지로 채워졌다. 일명 ‘복음방’을 거친 후 ‘센터’에서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마치자 신천지 신도가 됐다. 형민씨는 일반 신도를 거쳐 ‘팀장’까지 올랐다. 팀장의 하루는 예배와 교육, 전도, 그리고 평가, 정신교육이 쳇바퀴 돌 듯 했다. 아침 7시 교회 예배를 시작으로, 하루를 넘긴 새벽 1~2까지 신천지 스케줄이 반복됐다. 그나마 학교 수업이나 아르바이트 시간을 뺄 수 있지만, 대부분 신천지와 함께 한 하루하루였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전쟁 종식과 평화를 상징하는 대규모 카드섹션과 국화(國化) 퍼레이드, 왕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는 어가행렬 등 공연이 이어졌다. 신천지 총회장이 등장하고, 규모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드라마틱한 행사가 진행될수록 감격스러울 법했다. 하지만 그 행사에서 형민씨의 마음은 더 복잡했다.

마치 북한에서 카드섹션이나 열병식을 하는 걸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이용당하고 있구나. 한 명의 영광을 위해 착취당하고 있구나.

순간 그의 눈길이 공연에 참여한 이들에게 쏠렸다. 자신 또래의 대학생이었다. 신천지 내부에서는 각 지파별로 ‘문화부’를 집중적으로 운영·관리한다. 문화부는 신천지와 관련 단체들이 여는 각종 행사에서 풍악놀이나 무용 등 문화예술 공연을 주로 한다. 그들도 ‘이삭줍기’(신천지 내에서 전도를 의미)를 하며 문예 전공자 신도에게 공연예술을 배워야 한다.

‘감흥 없이 작위적인’ 공연과 연설이 이어지는 행사를 보면서 스물스물 올라온 그의 불편한 감정과 달리, 그의 옆에 선 이들의 감상은 달랐다.

“와~. 행사가 정말 크다.”

“우리 조직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

‘신천지’ 이름 감춘 채 민간단체로 적극 변신

코로나19와 신천지 파동이 있기 전, 그간 미디어를 통해 등장한 신천지는 고립된 교회당 내에서 벌어지는 설교와 예배가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종교 활동으로서 신천지의 모습은 지금 그들 모습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전쟁 종식’과 ‘평화’, ‘종교대통합’을 내건 HWPL 등 NGO(비정부민간단체)로 변신하면서 그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 1984년 3월 14일 이만희 총회장이 창립했다고 알려진 신천지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당시는 대부분 교회나 신학원 위주였지만 이 교세가 민간단체 영역으로 확대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신천지자원봉사단 등 봉사단체들이 중심이었지만, HWPL이 설립된 시기를 즈음할 때는 양상이나 규모가 달라졌다. 평화나 반전과 같은 인류 보편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대중단체로 변모한 것이다.

HWPL의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HWPL은 지난 2013년 6월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현재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법인이사이자 ‘유일한’ 대표로 등재돼 있다. HWPL과 함께 매년 개최되는 만국회의를 주관하는 IWPG(세계여성평화그룹)과 IPYG(국제평화청년그룹) 등도 비슷한 시기인 2012~2013년 설립돼 활동해왔다. 신천지는 공식적으로 이들 단체들이 신천지나 선교 활동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만국회의 행사 때도 신천지라는 세 글자는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시 종합행정조사에 들어간 노원구 상계동 서울야고보 지파 본부 교육관에 이만희 총회장의 사진 등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서울시 종합행정조사에 들어간 노원구 상계동 서울야고보 지파 본부 교육관에 이만희 총회장의 사진 등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서는 HWPL 등 민간단체들을 전면에 내세워 신천지 내 결속력 강화나 세력 확장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선교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신천지 전 신도이자 구리이단상담소에서 일하는 서민준 간사는 “신천지가 처음에는 신천지 이름을 대놓고 선교나 활동을 했다”면서 “신천지가 나쁜 곳이라는 이야기가 퍼지니 하세광(HWPL)과 청년, 여성그룹을 세분화해 관련 조직을 만들고 세력을 확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간단체로서 영역 확대가 자연스럽게 선교 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 간사는 “1990년대 이전 신천지가 처음 도래할 때 와 달리 (신천지 교인이 만들거나 관련된) 민간단체 등을 통해 영역을 확대하는 기틀을 만들었다”면서 “행사 참석자들 중 신천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선교 대상자도 자연스럽게 행사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국회의 기념 평화축제 등 전국적인 대규모 행사뿐만 아니라 HWPL과 IPYG, IWPG는 전국 지부별로 소규모 행사를 연례적으로 열고 있다. ‘평화의 손편지 쓰기’나 ‘세계평화여성의 날’ 등이 대표적이다.

동성서행 등 국제적인 행보···“내부 결속과 세 확대 차원 전략” 분석

내부적으로는 신천지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세를 키우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십만 인파가 몰려든 대규모 행사를 주최하고, 명망 있는 해외 인사를 초청하며, 신도들에게는 이만희 대표와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전 세계로 홍보하는 전략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이만희 대표는 2000년대 이후 ‘동쪽에서 이룬 것을 서쪽에 가서 전한다’는 명분으로 동성서행(東成西行)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13년 세계평화선언문 공포 이후, 2014년 민다나오 평화협정 종교대통합 회의 등을 연이어 열고 해외 활동에 적극 나섰다. HWPL도 ‘국제 문화교류 및 개도국 지원을 통해 민간외교를 활성화시키고 교류국간 상호 우호적인 관계 정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 신천지 경험담을 담은 책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를 펴낸 박형민씨는 “(큰 행사를 신천지 쪽에서 열면) 신도들에게 할당을 주고 참여를 독려한다”면서 “(대규모 민간단체 행사를) 동성서행이나 해외 인사들을 최대한 끌어 모으려는 행동으로 인식하고, 신천지 내에서도 영상이나 홍보자료 활용해 더 신경 쓰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서민준 간사는 “사실상 신천지 내부에서는 국제부의 외부 활동 명칭이 HWPL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외부 여성단체를 접촉할 때는 IWPG, 청년단체 접촉할 때는 IPYG 식으로 그 명칭이 달라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민간단체인 HWPL 등이 특정 시기에 설립 또는 보폭을 넓혀온 점을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종말론연구소(소장 윤재덕)에 따르면, 신천지 신도(인구)수는 지난해 기준 23만9353명(교육생 제외)다. 앞선 지난 2012년에 10만 명을 넘어선 후, 2014년 14만2421명에 달했다. 이에 따라 신천지의 민간단체 활동 집중을 신천지가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14만4000명’이라는 숫자와 관련 지어 해석하는 주장이다.

신천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천지 내에서는 출석과 전도, 실적이 높은 이들로 인정받아 14만4000명에 들면 제사장이 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천지개벽의 순간이 온다는 교리가 있다.

윤재덕 종말론연구소 소장은 “(HWPL 등을 설립하기 전) 신천지 내부적으로는 외연 확장이 주요한 당면 과제였는데 신도가 14만4000명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과제가 필요했을 것”이라면서 “(14만4000명 교인이 확보될 즈음) 해외로 눈을 돌려 국제법 제정이라든지 평화운동, 종교대통합 등을 주된 의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e는 HWPL과 IPYG 등 관련 단체들의 입장을 직접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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