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주민들 “사업 의도 이해 어렵다···지역 발전에도 걸림돌”
전문가 “오랜 기간 공론화 선행돼야”···서울시 “의견 수렴 방안 마련 중”

“도대체 어떤 문화적 가치가 있길래 보존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20일 오전 9시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이아무개씨는 ‘청량리 620 역사생활문화공간’ 조성 사업에 대한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여기 주민들은 청량리 하면 떠오르는 ‘588’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싶어하는데 왜 그걸 기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20일 오전 11시 서울시 동대문구 전능동.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임에도 성매매업소 한 곳이 아직 영업 중이다.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20일 오전 11시 서울시 동대문구 전능동.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임에도 성매매업소 한 곳이 아직 영업 중이다.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서울시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청량리역 바로 옆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에 청량리 620 역사생활문화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과거 서민문화가 엿보이는 한옥 여인숙을 체험하고 옛 정취를 살린 식당이나 주점 등 역사·문화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주민들은 과거 청량리 588이라 불리던 집창촌을 문화 자산으로 볼 수 있냐며 사업 전면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날 기자가 만난 주민들은 서울시의 보존 계획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동대문구 전농동 주민 김아무개씨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다. 민원 넣어도 봤지만 서울시 태도 변화가 없다”며 “좋은 것도 아닌데 기념할 게 없어서 집창촌을 기념하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그는 “만약 본인 집 앞이라고 생각하면 찬성할 수 있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해당 공간 인근에 들어설 아파트 입주민들 역시 서울시에 보존 계획 철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롯데캐슬 SKY-L65’ 입주 예정자는 “우리 같은 경우에 초등학교 세대가 550세대 정도 된다. 옆 한양수자인이나 해링턴 같은 경우도 그 정도는 될 거라 본다”며 “그 공간 사이에 술집이라든지 여행자 숙소를 짓겠다는 것은 단순히 집값 영향보다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 아이들이 통행하는 공간인데 굳이 이곳에 건설하려는 목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일 청량리4구역 재개발 현장.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20일 청량리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현장.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청량리동 공인중개사들은 해당 사업이 동네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으며 대다수 주민 동의 없이는 진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량리역 인근의 공인중개사 한아무개씨는 “청량리의 부정적 이미지인 588을 남긴다는 것은 동네 발전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것 말고도 경동시장, 한약상가 등 동네에 살릴 것들이 많다”며 “독립운동과 관련된 장소처럼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굳이 남겨서 동네 이미지만 나쁘게 만드는 게 아닐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12월 말 인근 오피스텔 리버리치 1차 입주가 시작되고 2차도 짓는 중이다. 그곳들만 입주한다 하더라도 민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주민들 반대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사업 강행한다면 나중에 반발은 더욱 클 것”이라며 “만약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주민들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동의받아야 할 문제지 강력하게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관계자나 소수의 전문가가 판단해 추진할 것이 아니라 주민 대다수 동의를 얻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존 자체가 독자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이미지를 계속 남겨두는 것이기에 주민들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며 “주민들이 반대한다면 보존의 필요성 등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서울시나 몇몇 전문가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추진할 것이 아니다. 현재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면 서울시가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 중엔 해당 사업에 대해 모르고 있는 주민도 많았다. 사업을 추진함에 앞서 주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도록 공론화 과정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심 교수는 “주민들 입장에선 집값은 어떻게 될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불안할 것”이라며 “주민들의 재산권, 교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이기에 일반적인 설문 몇 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범위의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며 구체적인 계획안이 마련된 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은 계획 단계라 (주민) 안내 일정을 정하진 못했다. 계획안이 정리되면 당연히 주민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면서도 “주민들이 우려하는 그런 모습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당연히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의견 수렴할 것인지 정해진 것이 없지만 여러 방안으로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