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제회의에서 직접적 언급 없어
서울·강원·전주 등 지자체에서 지급 발표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1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1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직접 주재한 첫 비상경제회의에서 관심이 모아졌던 재난기본소득은 끝내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과 홍콩, 대만 등은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50조원 상당의 비상금융조치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이 지원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도록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론 전 금융권이 동참한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이다.

지원책은 초저금리 대출과 만기 연장, 보증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메울 수 있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일반 국민 체감도가 떨어지는 감세나 저금리 대출 형태의 금융 지원보다는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주요국들은 과감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 한 명에게 1000달러(약 120만원)를 앞으로 2주 안에 지급하는 1조 달러 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여세 면제를 추진해 왔지만 감세 정책은 느린데다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자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 16일 발표한 ‘주요국별 코로나19 대응 및 조치’ 보고서를 보면 현재 직접 소득지원을 확정하거나 검토 중인 국가는 홍콩·대만·싱가포르·호주·중국 지방정부·일본 등이다.

홍콩은 지난달 26일 만 7년 이상 거주한 모든 성인 영주권자 700만명에게 1인당 1만 홍콩 달러(약 155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지급 대상을 저소득층 신규 이민자로 넓혔다. 대만은 지난달 27일 600억 대만 달러(약 2조4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확정하면서 피해 업종·직원에 대한 바우처 지원에 404억 대만달러를 배분했다.

싱가포르는 21세 이상 모든 시민권자에게 소득과 재산에 따라 최고 300 싱가포르 달러(약 26만원)를 현금 지원하기로 했다. 20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100 싱가포르 달러를 추가 지원한다. 호주는 오는 31일부터 650만명의 연금·실업급여 수급자에게 1인당 750호주 달러(약 58만원)를 지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날 비상경제회의에서 재난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은 “수입을 잃거나 일자리 잃은 사람들을 위한 지원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취약 계층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이날 발표한 '재난기본소득의 논의와 주요 쟁점'에서 “재난기본소득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이라기보다는 재원마련 등 현실성을 고려한 낮은 수준의 부분 기본소득 도입 방안"이라며 "또 하나의 복지제도가 추가되는 결과에 그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회복 효과에 대해서도 "면밀한 시뮬레이션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난기본소득은 1인당 50만~100만원 씩 주게 되면 25조~50조원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며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정부가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움직였다. 박원순 서울시 시장은 지난 18일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191만 가구 중 정부 추경예산안 지원을 못 받는 가구 117만7000여 가구에 30~50만 원의 긴급지원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강원도는 소상공인, 실직자 등 도민 30만명에게 1인당 40만원을 지급한다. 특히 강릉시는 극심한 경영난에 처한 영세소상공인과 중위소득 100%이하 만15세 이상 주민 등에게 1인당 80만~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계획이다. 전북 전주시도 실업자와 비정규직 등 5만명에게 한 달간 1인당 약 52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자체에서 재난기본소득 도입이 확산되면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번 비상경제회의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지만 향후 매주 이어지는 비상경제회의에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신 이들은 재난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효율성, 지속성 등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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