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치공방 뒤에 숨은 오너·경영인”···상반기에만 1조 넘는 상환요구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재계 15위 두산그룹의 핵심계열사 두산중공업이 위기다. 노조에 휴업을 제안했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강도 높은 자구노력도 기울어진 사세를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탈원전 정책이 원인이라 지적하지만 업계 및 전문가들은 탈원전만으론 지금의 위기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두산중공업이 당면한 위기는 ‘수익성 부재’다. 매출은 감소하는 데, 고정지출비용은 그대로다 보니 이익률이 감소하는 형태다. 자연히 최근 2년 간 계속된 두산중공업의 자구노력도 고정비용 감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임원 수를 줄이고, 과장급 이상 직원들의 임금을 낮췄다. 2개월 단위의 순환휴직과 계열사 전출을 도모한 바 있다.

이번 휴업제안도 마찬가지다.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정연인 사장이 노조에 발송한 휴업 제안서에도 잘 드러난다. 근로기준법 제46조 및 단체협약 제37조 등에 근거해 경영상 사유에 따라 발송된 해당 제안서에는 제안서에는 “고정비 절감을 위한 긴급조치”라고 적시됐다. 해당 제안을 두고 노조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두산중공업의 현 상황을 두고 탈원전이 주된 원인이란 해석이 많다. 업체 측도 같은 생각이다. 노조에 보낸 제안서에도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원자력·석탄화력 프로젝트 취소로 10조원의 수주물량이 증발했다”고 이번 위기의 배경을 소개했다. 실제 문재인정부 출범 뒤 정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신규원전 6기 백지화 및 석탄발전소 폐기 및 연료전환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도 이 부분에 있어선 동의하는 분위기다. 탈원전이 지금의 위기를 낳은 직접적 원인이라는 의미다. 다만, 비중을 따져 봤을 때 다른 요인들을 압도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두산중공업이 걸어왔던 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상황을 두고 “오너 및 경영진의 판단착오가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라며 “정치적 공방의 이면에 이들의 과오가 가려져 있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도래 직후인 2009년 경기도 일산 위브더제니스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자금난에 봉착한 두산건설을 살리겠다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두산중공업이 쏟아 부은 돈만 2조원에 육박했지만 결국 정상화에 실패했다”면서 “두산건설을 이끌었던 박정원 회장은 현재 두산그룹 회장이 돼 개인적 영예를 이어가고 있지만,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자금을 쏟아 부은 두산중공업은 휴업을 고심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 기계부품·소재팀장 박광순 박사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두산중공업 입장에서 치명적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이정도 변수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내부적으로 곪아 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부채상환 등 자금압박이 지속되며 현금화 시킬 수 있는 알짜 사업·기술·자산을 매각하면서 자연히 사업성이 부족한 분야들만 남겨두게 됐고, 마지막 보루였던 원전·발전 산업에서의 수주감소로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풀이했다.

미래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것도 위기 원인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탈원전·탈석탄의 경우 이행 시기와 강도 등을 둘러싼 견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글로벌 에너지시장의 흐름이라 볼 수 있다”면서 “당장의 현금창출을 위해 미래 발전가능성이 높은 사업부문들을 정리하면서 원전 의존도가 과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라 진단했다.

이어 그는 “회사 외부의 시각과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적어도 두산중공업 스스로가 정치권에 기대, 정부의 그릇된 정책만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인식해선 안 될 일”이라면서 “시장의 우려 속에서도 무리한 경영적 판단으로 수많은 주주들의 재산에 피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 오너 및 경영진의 반성과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탈원전정책에 대한 재고가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입을 모았다. 이번 두산중공업의 사례와 같이 급속도로 전개된 탈원전 정책으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알맞은 정책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두산중공업은 상반기에만 1조원이 웃도는 상환요구를 받고 있다. 내달 말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공모채 6000여억원의 경우 수출입은행의 지급보증으로 대출이 가능하지만, 5월 약 5000억원의 추가상환 부담이 잔존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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