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계자 코로나 사태 낙관적 발언들, 오히려 정부에 대한 반감 키워
냉정하고 투명하게만 이야기하고 현실적 대책 발표하면 정부도 욕먹을 이유 없어

과거 베트남 전쟁 때 포로로 잡혔다가 10년 만에 살아 돌아온 스톡데일 장군은 포로수용소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이 결국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무작정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한 사람들과 여기서 죽을 것이라고 비관한 사람들이다. 살아나간 사람들은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여기서 반드시 버텨서 살아나가겠다고 다짐한 이들이었다는 전언이다.

위기 순간에 낙관은 비관만큼이나 위험하다. 이런 점에서 비춰볼 때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자꾸 안정되고 있다고 낙관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일부 정부 및 정치권 인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국민들이 방심하고 행동하면 정부가 냉철하게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자꾸 낙관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코로나19 감염이 전국으로 급격하게 확산할 수 있었던 위험을 비교적 단기간에 통제하여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하루 만에 성남 ‘은혜의 강’ 교회에서 수 십 명의 집단 확진자가 생겨났다. 이 외에도 지금껏 정부가 ‘안정’ 등의 단어를 섞어 낙관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현실에선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정부 관계자들의 코로나19 낙관 발언은 국민보다도 오히려 정부에게 좋지 않다. 정부 스스로를 욕 먹이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 사태는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구로 콜센터, 성남 ‘은혜의 강’ 교회와 같은 사태가 계속해서 터지고 있고 또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이럴 때 낙관적인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면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화가 나 있는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몇몇 특정 사태만 없었으면’ 이라고 단서를 달 문제가 아니다.

원래 전염병 사태가 몇몇 집단 감염 사례가 지역사회로 번져나가는 식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사태가 잦아들 때까지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낙관적인 멘트는 ‘안하느니만 못한’ 이야기란 소리다.

국민들을 오히려 자극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19 사태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끝났다고 생각해야 끝나는 것이다. 확진자수가 매일매일 어떻게 변했든 지금 당장 조심해야 하는 상황임은 분명한데, 자꾸 낙관하는 이야기를 하면 안 그래도 살기 빡빡한 사람들의 화를 돋우게 된다. 일부 국민들이긴 하지만 방심하고 행동할 여지를 준다는 점도 문제다.

이태원 클럽은 이 시국에도 줄을 서서 들어간다고 한다. 면역력이 약한 노년층만 걸린다는 헛소문도 한 몫 한 것인데 클럽 줄 선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한 미국 NBA선수들도 확진 판정을 받고 있는 판국이다.

꼭 비관과 낙관 둘 중 하나를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현실감’과 ‘냉정함’이 필요한 시기다. 그저 솔직하고 투명하게 상황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행동 양식만 이야기해주면 정부는 욕먹을 일이 없다. 입국금지 등 초동 대처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찌됐든 코로나19 사태는 애초에 정부 때문에 터진 것이 아니다. 또 마스크가 부족한 것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사실 세계적으로 어쩔 수 없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마스크를 써야하는지 오락가락 하거나 약국에서도 황당해 한 ‘깜짝 대량공급’ 발표를 할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공급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주면 된다. 그래도 나오는 비난은 어쩔 수 없지만, 괜히 급하게 비난을 잠재우려고 무리를 하는 모습은 더 신뢰를 잃기 십상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정무적, 정치적 용어나 표현은 싹 빼고 그저 현실과 대응방안만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면 상당수 국민들은 칭찬하고 정부를 믿게 된다. 2020년 국민들이 생각하는 신뢰 가고 멋진 정부 관계자의 모습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요란하지 않게 그저 묵묵하고 냉정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갖고 응원을 보낸다.

국민들이 왜 자극적인 표현 없이 특별할 것도 없는 용어로 현 상황만 또박또박 이야기해주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게 무한 격려를 보내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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