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 “장애인 재난재해 매뉴얼 제대로 마련해야”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시ㆍ 청각장애인 및 중복장애인 지원 대책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여수 농인 인권활동가가 수어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시ㆍ 청각장애인 및 중복장애인 지원 대책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여수 농인 인권활동가가 수어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 극심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장애인 확진자나 자기격리자 또는 그들 가족에 대한 지원과 대안이나 매뉴얼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애인의 경우 감염병에 취약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 면역력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고 거동이 불편해서 대인·사물 간 접촉이 많은 경우도 있다. 또한 시설 생활을 하는 경우 단체생활에서 오는 위험성도 있다.

그러나 취재결과,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관련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일에 개정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감염 취약계층은 노인과 어린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장애인의 경우 장애별로 특수한 상황에 놓이거나 지원 방법 역시 다 달라야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나 가이드라인은 없다.

장애인 단체들은 코로나19로 비장애인보다 더 큰 불편을 안고 살아가지만 전 국민이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큰 활동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현재 시각장애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정보 획득에 대한 불편함을, 청각장애인은 수어 통역 부족, 지체장애인은 마스크 구매 등 이동에 대한 불편함이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중국에서 가족이 코로나19 확진자로 격리되면서 혼자 남은 장애인이 방치돼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며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장애인활동보조인의 희생과 헌신으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희생과 헌신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예방법과 대책을 만들어서 배포해야 한다”며 “장애인들이 직접 마스크를 구매하거나 대리구매 하도록 하지 말고 할당을 해서 지급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저소득층 위주로만 배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아닌 장애인들은 매주 불편을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내 약국에서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좋은 약국은 극히 일부다. 대다수가 좁은 입구, 계단 등으로 접근이 어렵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는 대리구매 제도는 만병통치약이 아닌데 장애인은 돌아다니지 말라는 식의 메시지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면 다행인데 또 다시 매뉴얼을 만들지 않을까봐 가장 우려된다”며 “코로나19가 진정된 뒤 어떻게 상황을 극복했고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꼼꼼히 조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부적으로 마련해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확진자나 격리자가 발생한 경우 장애인들의 어려움은 배가 된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 생활하기 힘든 경우 격리자가 되면 장애인활동보조인의 감염병에 대한 특별한 교육이나 방침을 알지 못한 채 장애인에게 서비스하게 된다. 실제로 이들은 감염의 우려를 안고도 방호복을 입고 헌신과 봉사의 정신으로 격리자들에게 서비스하기도 했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은 장애로 인해 신체적 활동, 가사활동, 사회활동 등이 어려운 장애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위생관리, 식사, 실내 이동, 청소, 등하교 및 출퇴근, 외출 시 동행 등을 지원한다.

또 장애인 격리자들에게는 비장애인과 같이 라면과 마스크가 지원되는데 홀로 라면을 끓여먹을 수 없는 장애인들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시민사회소통위원회는 장애인 자가격리자와 그 가족 관련 지원자에 대한 장애 특성에 맞는 지원이 이뤄져야 하지만 보건소와 구청도 모두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별도의 지침과 대책 마련 ▲감염병 기본계획 및 표준 매뉴얼 마련 ▲공적마스크 공급 등 감염병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 및 관련 정보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 ▲장애인 자가격리자에 대한 지원 확대·보완 등을 촉구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고등판무관 역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에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추가적인 조치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노인을 위한 충분한 고려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아동,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들이 모든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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