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채무자가 명예훼손 피해자로…양육비 안줘도 제재 미약
형사범죄 관점서 입법 필요성 대두…‘강제성 강화’ 근거 마련돼야

이혼 전 배우자의 양육비 미지급 행위를 주변인에게 알린 양육비 피해자가 또 재판에 넘겨졌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다. 적시한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사람의 명예가 훼손됐을 경우 처벌하는 우리나라 형법이 근거가 됐다.

검찰은 A씨가 양육비 미지급자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양육비 촉구 글에 삽입된 이미지에 ‘부끄럽지 않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것을 두고 “비난조의 표현을 사용했다”고 봤다. 또 사업체를 운영하는 B씨가 이 사건 메시지로 파렴치한으로 간주돼 거래처와의 거래가 중단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법리를 떠나 일반적인 시각에서 검찰의 기소가 공평한 것일까. 이혼 조정조서에 따라 마땅히 주어야 할 양육비를 주지 않은 가해자가 명예훼손 피해자가 되고, 양육비를 받지도 못하고 고등학생 두 아이를 양육해온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게 공정한가.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한 비양육자의 명예가 약속을 지켜달라는 양육자의 호소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까.

사실 A씨가 양육비를 받기위한 법적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는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해 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 등 여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행절차 불이행에 따른 제재들을 민사집행법을 준용하는 ‘가사소송법’이나 ‘민사소송규칙’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채권자가 받는 불이익이 크지 않다. 또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노력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리고,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다고 해도 곧바로 양육비를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재판에서 져도 안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양육비 미지급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강제성의 강화’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양육비 문제를 ‘형사범죄’ 관점에서 보고 징역 등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실제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는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 6개월을 선고하고, 아이다호주는 최대 14년형을 선고하기도 한다. 독일은 양육비 채무자에게 최장 징역 3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고, 프랑스 역시 1만5000유로(한화 약 1900만원)의 벌금과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률이 규정돼 있다. 캐나다의 경우 양육비를 지속적으로 체납하면 여권을 비롯한 각종 면허 발급이 거부된다.

선진국들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개인의 행위가 국가에 의존적인 피부양자를 발생시키고, 이는 피부양자를 예방 또는 감소시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공공평화를 위협한다는 전제에서 이러한 처벌을 하고 있다. 1897년 미국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국가에 대한 의무’와 동일한 것으로 판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회에도 이미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제재 강화 법안 10건이 발의돼 있다.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보고 아동복지법상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개정안, 양육비이행확보법에 따라 형사처벌 규정을 두는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수년째 소관 상임위에 계류돼 있을 뿐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은 단 한건도 없다. 20대 국회가 만료되면 이러한 법안들은 모두 자동 폐기된다.

양육비 미지급률이 80%에 육박하고, 피해아동이 100만명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양육비 활동가들이 입법촉구활동을 펼치고 있다지만, 결국엔 국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양육비 미지급은 공공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고, 국가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적극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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