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신고 운영 실효성 논란...시민단체 “지역노동청이 사업장에 확인해야”

전국 어린이집이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어린이집에 임시 휴원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국 어린이집이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어린이집에 임시 휴원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로 어린이집과 초·중·고등학교의 개원, 개학이 연기되면서 정부가 가족돌봄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소규모 사업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제도 활성화를 위해 '익명신고' 시스템 운영을 보완책으로 내놓았지만, 이 마저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개인에게 신고를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사업장을 확인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1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개원과 개학이 늦춰지면서 정부는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한 가족돌봄휴가제 실시하고 있다. 올해 처음 시행된 가족돌봄휴가는 가족의 질병‧사고‧노령 또는 자녀의 양육을 사유로 연간 최대 10일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일부 소규모 사업장에서 가족돌봄휴가가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고용노동부가 지난 9일부터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가족돌봄휴가 익명신고’ 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했다.

익명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관이 직접 유선 등으로 지도한다. 만약 시정되지 않을 경우 신고인의 동의를 얻어 정식 사건으로 접수하고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익명이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사업장의 경우 익명신고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대체로 가족돌봄휴가 사용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기업은행 계열사 직원은 “기업은행의 경우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매끄럽게 따라가는 분위기다. 육아하는 이들은 자유롭게 가족돌봄휴가를 활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다른 은행의 경우 사정이 다르더라. 개인 연차를 소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장이나 보수적인 기업, 병원의 경우 이야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한 은행 직원은 가족돌봄휴가 익명신고에 대해 묻자 “전혀 의미 없다고 본다”며 “실제로 쓰는 직원도 얼마 없을뿐더러 신고를 한다고 해도 누가 신고했는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직원은 미취학 자녀를 두고 있고 두 부부 모두 은행권에 근무한다.

그는 이어 “남편은 가족돌봄휴가를 쓰기가 더 곤란한 입장”이라며 “책임자들이 보수적이어서 웬만하면 쓰지 말고 긴급상황에만 쓰라고 이미 지시했다. 남편이 홧김에 익명신고를 하려고도 해봤지만 누군지 금방 들통 날 것 같아서 참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가족돌봄휴가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그림의 떡이고, 익명 신고 역시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부모가 긴급 돌봄 신청을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에 할 때 신청사유를 적게 하면서 부모가 어느 직장에 근무하는지 반드시 써내도록 해서 교육청이 지역노동청과 협업해서 관할 노동지청에서 사업장마다 이들이 가족돌봄휴가를 쓰지 못하고 긴급 돌봄을 신청하는 이유를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관에서 일일이 사업장에 확인하면서 사유를 파악하고 압박하는 방법인 셈이다. 지역노동청이 나서면 학부모가 직장의 눈치를 보면서 부담을 안고 신고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업장 현황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장 활동가는 “작은 기업일수록 가족돌봄휴가를 쓰지도 못하고 지원금도 못 받는 부익부빈익빈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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