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공매도 규제 발표에 실망··· '모든 종목 공매도 금지' 요구 목소리
국내 공매도 제도, 개인투자자 진입장벽 높고 외국계 증권사 중심으로 불법 '무차입공매도' 횡행

은성수 금융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금융당국이 발표한 공매도 규제 강화안을 놓고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증시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융당국은 특정 종목에 대한 공매도 규제 적용기준과 기간을 변경했다. 그러나 전체 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높은 진입장벽과 무차입공매도 횡행 등을 근거로 모든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 공매도 금지 왜 주저하나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전날 발표한 공매도 규제 강화안은 이날부터 적용됐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오늘 6월9일까지 '공매도과열종목 지정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공매도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제는 2017년 3월 도입된 제도로 공매도 거래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급락하는 종목을 지정, 다음 1거래일 동안 공매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규제 강화로 과열종목지정 기준이 대폭 낮춰졌고 공매도 거래 금지기간도 기존 1거래일에서 10거래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나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종목만 공매도가 가능한 '홍콩식 공매도 지정제‘는 시행하지 않았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2008년10월1일부터 2009년5월30일까지 8개월 동안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에도 2011년 8월10일부터 11월9일까지 3개월 동안 공매도를 금지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와 다른 이유에 대해 “공매도는 적정가격발견 등 순기능도 있어 전 종목에 대해 금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공매도 금지를 ‘최후의 카드’로 남겨놓기 위해서 일단 보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상황별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이 마련돼 있는 만큼 국내외 시장 상황을 고려해 실기하지 않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내부에서 공매도 금지가 금융당국 스스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고 인정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금지는 글로벌 시장동향을 살펴가며 신중히 결정할 사안”이라며 “과거 두 차례 공매도 금지조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 전이를 막기 위해 국제공조 하에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진입장벽·무차입공매도에 개인투자자 '분노'

공매도 금지가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을 담은 연구보고서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종종 발간됐다.

손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2014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공매도 금지조치가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공매도 금지는 주식 가격의 변동성 확대를 축소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며 “공매도 거래자가 가진 시장유동성 공급자로서 역할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의 실효성보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문제삼으며 금융당국에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에서 공매도는 사실상 개인투자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거래방식이다.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를 이용하려면 투자금액 5000만원, 순자산 5억원이상이라는 전문투자자 자격요건을 확보해야 한다. 이마저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종목과 수량에 제약이 많다.

반대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언제든지 공매도용 주식을 쉽게 빌릴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거래된 공매도 거래대금 총 103조4900억원 가운데 개인투자자 거래대금은 1조1000억원으로 1.1%에 그쳤다. 반면 외국인투자자 거래대금은 약 65조원으로 63%, 기관투자가는 37조3000억원으로 36.1%였다.

이는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대비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한국과 일본의 주식 신용거래제도 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본 도쿄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공매도 가운데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23.5%에 이른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개인이 증권사별 자체 신용에 의지해 공매도를 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우 중앙집중기관의 대주서비스를 이용해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을 더욱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가 실제 국내 증시에서는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와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로 나뉜다. 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린 다음 그 주식을 팔고 이후에 주식을 다시 사서 돌려주는 것으로 엄연한 실물 주식 거래다. 반면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채 주식 매도주문을 먼저 내고 이후에 주식을 사서 갚는 방식이다.

무차입 공매도는 실제 빌린 주식보다 더 많은 주식을 팔 수 있기에 과매도가 일어나게 되고 주가하락폭을 키운다. 무차입 공매도는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국내 증시에서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이를 완벽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은 현재 구축되어 있지 않다. 다만 종종 너무 많은 공매도 주문을 내는 바람에 결제 이후 주식을 다 빌리지 못하는 ‘사고’가 적발될 뿐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달 '국내 주식시장의 공매도와 주가위험에 관한 연구'자료에서 "원칙적으로 무차입 공매도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음에도 전산상의 조작 등을 통해 무차입 공매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사건들이 반복 발생하고 있다"며 "현재보다 훨씬 강력한 징벌적 처벌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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