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명령·코로나19로 ‘여행목적’ 달성 안 되면 면책 가능성 커”
법무법인 태평양, ‘불가항력’ 면책 법리 적용 가능성 분석자료 발표

/ 사진=조현경 디자이너
/ 사진=조현경 디자이너

대구에 거주하는 백아무개(35)씨는 오는 4월 18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식을 7월로 미루기로 했다. 문제는 신혼여행이었다. 이탈리아 로마로 해외여행을 준비했던 백씨는 항공사·여행사 취소에 따른 수수료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에 빠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이탈리아 직항노선 운휴가 결정되면서 항공사 취소수수료 및 위약금은 면제받게 됐다. 백씨는 여행사도 취소수수료가 면제되는지 확인 중이다.

코로나19로 다양한 유형의 계약상 채무불이행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의한 면책 조항에 대한 일관된 해석지침은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국내 대형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태평양은 6일 코로나19에 따른 계약상 의무불이행과 국내법상 불가항력 법리의 적용가능성을 분석해 발표했다.

먼저 ‘불가항력’이란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정을 의미한다. 통상 계약에서 불가항력은 당사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로 규정된다. 천재지변, 전쟁 등이 불가항력 사례로 꼽힌다. 불가항력은 단지 당사자에게 귀책사유 없음을 의미하는 ‘무과실’보다 좁은 개념이지만, 판례의 해석에 따르면 불가항력과 무과실의 판단 기준에 실무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불가항력 면책 조항에 관한 각 업계의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백씨의 사례처럼 항공사의 경우 코로나19를 불가항력으로 해석해 취소 수수료 및 위약금을 면제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는 인천-로마 직항노선에 대해 운휴기간(~4월25일까지) 취소 위약금을 면제하기로 했다. 항공사 관계자는 “입국금지 조치가 발생해 비운항 조치를 취할 경우 비운항 공지 시점부터 환불 요청 시 환불수수료 면제 한다”며 “타사 항공편 처리는 당사 책임으로 인한 비운항시만 해당하고, 타국에서의 한국인 입국금지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비운항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홍콩, 타이베이 포함) 지역에서도 취소수수료가 면제되는 경우가 많다.

태평양은 “정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여행을 금지했다면 이는 국외여행표준약관상 ‘정부의 명령’에 해당하므로 당사자는 여행 출발 전 여행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로 인정된다면 취소수수료의 부담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 이외의 지역의 경우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취소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구체적 지역에 따라 코로나19에 의한 영향이 달리 평가되므로 불가항력의 인정 여부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은 중국국제무역 분야에서도 쟁점이다. 중국의 민간 대외경제무역조직인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기한 내에 국제무역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중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불가항력 사실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법원 및 외국 중재기관 등 중국 역외 사건의 경우 사실증명 자료로 인정될 수 있다고 태평양은 분석했다.

태평양은 “CCPIT는 코로나19로 납품을 지체한 중국 내 기업들에 대해 불가항력 사실확인서를 발급해주고 있다”며 “CCPIT가 법률상 공증기관이 아니지만, 중국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조직이므로 법원이 불가항력 판단에 있어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국제건설 분쟁에서도 코로나19는 불가항력으로 인정될 여지가 존재한다. 건설계약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FIDIC 국제표준계약서에 따르면, 불가항력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일방 당사자의 통제범위를 벗어났을 것 ▲당사자가 계약체결 전에 적절하게 대비할 수 없었을 것 ▲사태발생 후 적절히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었을 것 ▲실질적으로 타방 당사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요건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이 요건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게 태평양 측의 분석이다. 다만, 구체적 사안에 따라 합리적인 관점에서 이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면 불가항력 주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불가항력 면책은 사업장의 휴업과 임금 지급 분야에서도 논쟁거리다.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에 따르면, 사업주 자체판단으로 휴업을 하면 근로기준법 제46조 제1항에 따라 휴업수당 지급이 필요하다. 반면 정부의 격리조치 등 불가항력으로 휴업 시에는 휴업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휴업이 정부의 격리조치로 인한 것이 아닌 이상 코로나19를 불가항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태평양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업자의 휴업을 일률적으로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휴업’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부지침만을 근거로 불가항력 여부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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