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엔젤 투자 지원금·수수료 명목 개인 계좌로 돈 빼돌리는 ‘블랙엔젤’ 사례 늘어나···전문가 “금융기관 통한 계좌·녹취 활용해야”

엔젤투자매칭펀드를 노리고 접근하는 블랙엔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엔젤투자매칭펀드를 노리고 접근하는 블랙엔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최근 벤처 붐을 타고 창업 초기 엔젤투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사기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함께 정부 지원금을 받자며 접근해 창업자 스스로에게 투자금을 마련하게 하고, 수수료를 떼먹는 이른바 ‘블랙엔젤’ 탓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의 과도한 직접 개입을 피하고 창업자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4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엔젤투자 규모는 553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1세대 벤처투자 붐이 일었던 지난 2000년의 연간 5493억원 기록을 뛰어넘는 수치다. 중기부는 소득공제 확대 등 세제 혜택이 늘어나며 앞으로 엔젤투자 규모는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엔젤투자매칭펀드를 노리고 접근하는 ‘블랙엔젤’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엔젤투자매칭펀드는 엔젤투자자가 먼저 투자한 스타트업에 정부가 매칭 투자를 하는 펀드다.

블랙엔젤이 창업자를 속이는 법은 간단하다. 창업자에게 투자금을 직접 마련하게 해 현금이나 수표로 받거나 타인의 계좌를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의 계좌에 입금한다. 그 돈을 자신이 투자한 것처럼 가장하고 매칭펀드를 신청해 정부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이렇게 받은 투자금 일부분을 수수료 명목으로 창업자에게 받아 이익을 챙기는 식이다.

3년차 창업가 김아무개(남·32)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엔젤투자자 A씨로부터 본인이 5000만원을 투자하면 정부가 추가로 1억원을 매칭해 투자할 것이라는 점을 제안받았다”고 말했다. 그 후 엔젤투자자는 김씨에게 돈을 직접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돈을 모아 정부 지원을 받았다. A씨는 중간에서 자문료 명목으로 개인 계좌를 통해 2000만원을 챙겼다.

김씨는 “결국 피해를 입증할 방법이 많지 않아 블랙엔젤이 아닌 창업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잘 몰랐던 내 책임도 있지만 이렇다 할 사후 대책이 없다는 점이 피해를 더 키운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엔젤펀드 회수율도 하락하는 추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엔젤펀드 투자 기업 507개 중 18.7%인 95개가 폐업했다. 한국벤처투자는 엔젤펀드로 151억3000만원을 투자해 이 중 20%에 불과한 29억2000만원만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초기 투자의 위험성 탓도 있지만, 정부의 투자자금을 노린 블랙엔젤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창업자들이 회사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대외적으로 피해를 밝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고훈 크라우드베이스 대표는 “정부가 사적인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말하고 개입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며 “가장 큰 문제는 창업자들이 잘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점이다”고 지적했다.

박기택 데이원비즈 대표는 “블랙엔젤들은 현금 거래가 ‘관례’라며 유혹하는데 반드시 금융기관을 통한 계좌를 이용하길 권한다”면서 “단 개인 투자자나 엔젤투자자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녹취부터 해 증거를 확보하고 과도하게 직접 관여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표는 “초기 창업자 선발 및 투자, 보육을 전문적으로 돕는 액셀러레이터들은 해당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와 이해관계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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