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물품 사기 피해 속출···업체 차원에서 환불심사 강화하겠다지만 실효성 부족 지적
전문가 "정부 차원 소비자 보호 시스템 마련해야"

# 지난해 크라우드펀딩 ‘와디즈’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칫솔을 8배 비싼 값에 뻥튀기해 팔던 업체는 1억3000만원까지 펀딩금을 모으다가 적발돼 펀딩이 취소됐다. 한 샤워기 업체는 일반 수돗물을 육각수로 바꿔준다며 효능을 과대 광고해 논란이 일었지만 1억6500만원을 모으며 펀딩을 마감했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사기 피해 호소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현행법상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탓에 소비자와 업체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시장 현황.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크라우드펀딩 시장 현황.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24일 업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세계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약 18조원 규모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규모는 38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중이다.

크라우드펀딩은 투자형과 리워드(Reward)형으로 나뉜다. 리워드형의 경우 판매자는 상품 기획 단계에서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시장에 본격적으로 상품을 선보이기 전 테스트배드로 이용한다. 투자자는 기업을 든든히 후원하는 서포터 역할을 맡게 된다.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는 ‘와디즈’와 ‘텀블벅’이 대표 주자다. 와디즈는 지난해 전체 펀딩액으로 1435억원, 프로젝트는 7881건을 모집했다. 이 가운데 리워드형 펀딩 거래액은 1051억원, 프로젝트는 7643건을 기록했다. 리워드 중심 ‘텀블벅’도 지난해 누적 거래액이 2만건을 돌파했다. 화제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앨범 펀딩으로는 단일 거래로 26억원을 모았다. 이밖에도 크라우디, 오마이컴퍼니, 오픈트레이드 등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리워드를 겸하고 있다.

◇ 잡음 끊이지 않는 크라우드펀딩···업체 “환불 및 심사 규정 강화할 것”

그러나 투자자이자 소비자들의 피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와디즈에서 판매한 빔프로젝터는 중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하던 것을 새 상품으로 둔갑해 내놔 논란이 됐다. 상품을 받은 투자자들은 최근 부당한 표시광고 항목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유튜버 ‘사망여우’는 와디즈 불량제품을 연신 저격하는 영상으로 200만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텀블벅에서는 8000만원가량 자금을 모은 에코백이 품질 불량, 환불 지연 문제가 생겨 민원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크라우드펀딩은 투자로 분류돼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회사 홈페이지 하단에 투자위험고지 문구를 내걸고 있다. 투자손실의 위험을 보전하거나 보상품 제공은 보장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랫폼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투자자는 최종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결국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답답해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불만을 제기하거나 환불을 받기가 어렵다. 후원금 모금이 끝나는 순간부터 결제를 물릴 수도 없기 때문에 판매 업체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논란이 연이어 발생하자 각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자체적인 환불정책과 모니터링으로 판매업자들을 통제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와디즈는 지난달 21일부터 환불정책을 시작했다. 판매자가 발송하겠다고 약속한 날보다 90일 이상 지연되거나, 제품 자체에 하자가 있을 경우 투자금을 반환한다. 텀블벅은 이제껏 판매자가 개별로 투자금을 환불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올해부터는 텀블벅이 환불을 맡을 예정이다.

다만 상품에 대해서는 통제를 가하기는 어렵다는 게 각 회사들의 입장이다. 와디즈 관계자는 “문제가 된 중국 물품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글로벌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국내 업체가 만들 경우에 해외를 통한 직접구매보다 값이 싸도록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며 “또한 판매자 책임을 높이기 위해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게시하도록 하는 등 자율적인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텀블벅 관계자는 “펀딩 준비과정과 지속적인 모니터링, 신뢰 훼손 창작자 이용 제한에 운영 리소스를 투자하고 있다”며 “다만 한번 문제를 일으킨 판매자를 아예 제한하기보다는 판매자가 추후 개선의 여지를 내비치면 등록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 “플랫폼 자체 규정은 불충분···정부가 소비자 보호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환불정책만으로는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먼저 환불약관 자체가 소비자에게 불합리하게 규정돼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에서 제17조 청약철회 등에 따르면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계약 내용과 다를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0일 이내에 취소·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와디즈의 약관을 살펴보면 ‘서포터는 수령한 리워드가 아래 어느 하나에 해당할 경우 수령일로부터 7일 이내에 와디즈를 통해 메이커에게 펀딩금 반환 신청을 할 수 있다’며 ’리워드의 내용이 표시·광고 내용과 현저하게 상이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최초롱 변호사 겸 화난사람들 대표는 시사저널e와의 통화에서 “플랫폼에서 리워드펀딩에 대한 환불약관을 도입했지만 전자상거래법에서 정한 것보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며 “대표적으로 허위광고의 경우 제품 수령일부터 30일 이내 청약철회(환불요구) 가능한 것이 현행법인데 플랫폼은 7일 이내 환불을 요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플랫폼이 발표한 환불보상책은 표현이 모호하고 강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명확한 책임 규정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플랫폼이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건 말이 될 수 없다. 플랫폼에서 프로젝트 진행을 결정한 순간부터 메이커와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혔다.

또 전문가들은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전자상거래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통신판매업에 준하는 시행령·시행규칙 등 정부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소비자와 판매자 간 1:1의 관계가 아닌 목표액을 달성해야 상품 판매가 가능한 시스템이라 전자상거래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유추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플랫폼에 대해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에 준하는 시행령·시행규칙 등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플랫폼의 사후 보상 책임 규정과 심사 의무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 교수도 “소비자 신뢰가 기반이 돼야 산업의 지속성장도 가능하다”며 “프로젝트가 끝나도 플랫폼에 일정 기간 보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처벌에 집중하자는 것이 아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하는 차원의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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