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우리은행, 늦어도 3월초 배상 작업 완료···나머지 5개 은행, 검토만 반복
피해기업 “국책은행 산은, 배상 분위기 주도해야”
산은, 정무적 요소 등으로 결정 쉽지 않을 듯

키코공동대책위원회/사진=이기욱 기자
키코공동대책위원회/사진=이기욱 기자

산업은행에 대한 고위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 기업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은행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대상 은행들 중 처음으로 배상을 결정한 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다른 은행들의 배상절차가 장기간 지연되자 피해 기업들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빠른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많은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늦어도 내달 초까지 키코 피해기업 2곳에 대한 배상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미 우리은행과 피해 기업들은 분쟁조정안에 대한 합의를 끝마친 상황이며 지급방식 등에 대한 조율 과정만을 남겨놓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사회 차원에서 무엇보다 소비자보호 가치가 우선된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배임 등과 관련된 다양한 법률적 검토를 마친 결과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은행과 함께 금감원 분조위로부터 피해배상을 권고받은 5개 은행(신한, 하나, 대구, 씨티, 산업)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우리은행이 배상 결정을 내린 이달 초까지만 해도 다른 은행들도 배상 행렬에 동참할 것이라는 예상들이 많았으나 아직 이들 은행은 검토만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배상 결정 시한을 내달 6일까지 연장시킨 상태다.

150억원으로 가장 배상액이 많은 신한은행은 이사회까지 열고 조정안 수용 여부를 논의했었으나 추가적인 검토를 위해 결정을 미뤘다. 배상액이 각각 18억원, 11억원 규모인 하나은행과 대구은행도 여전히 검토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은 본사의 결정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배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액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법률적으로 문제될 가능성이 있어서 검토가 오래 이뤄지고 있다”며 “투자 상품 손실에 대한 배상이 선례로 남길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부담”이라고 언급했다.

은행들의 소극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키코 피해기업들 사이에서는 산업은행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국책은행으로서 기업 지원에 앞장서야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은행과 같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산업은행이 금감원으로부터 권고받은 배상액은 28억원이다.

한 키코 피해기업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민간기업인 우리은행보다 배상 결정에 주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시중은행들 입장에서는 국책은행도 안 하고 있는 것을 굳이 먼저 나서서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장은 “지금 은행들의 분위기를 주도해야 할 것은 배상액이 가장 많은 신한은행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라며 “두 은행이 결정을 내리면 다른 은행들의 배상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배상 결정에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배상 결정이 시중은행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같이 산업은행의 정책 결정에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며 “키코 배상 역시 나중에 만약 정권이 바뀌게 되면 지금의 결정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배상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배임 등을 포함해 다양한 법률적인 사안들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