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비용 효율성 개선 활성화로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 도입
고령층 애용하는 영업점은 사라져가
노인 고객층 “디지털금융, 우리에겐 불편한 거래”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지점 모습 /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지점 모습 / 사진=연합뉴스

낙성대입구역 인근 A은행 지점. 번호표를 받고 상담 순서를 기다리는 고객들 가운데 고령층이 많았다. 반면 은행마다 적극 도입하고 있는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를 이용하는 노인은 찾을 수 없었다. 은행 거래를 마치고 나온 70대 여성 A씨는 “무인자동화기기나 인터넷(뱅킹)이나 노인들 입장에선 다루기에 한계가 있으니 천천히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토로했다.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 지난해 말 전년比 두 배 늘어

갈수록 고령층 금융 거래 장벽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에서 영업점 업무를 대체하는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은행 무인자동화기기는 지난해 12월 말 233대다. 전년(133대)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숫자다. 국민은행이 고기능 무인자동화기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113대를 운영 중으로 전체의 절반가량이다.

무인자동화기기는 예적금 신규가입, 인터넷·모바일뱅킹 가입, 카드 발급 등 창구 업무의 80% 이상을 수행한다. 365일 이용도 가능해 실질적인 무인점포 역할을 수행한다.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단순한 업무로 영업점 대기시간이 늘어나는 경우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다”고 말했다.

무인자동화기기는 기존 ATM보다 설치비용은 높지만 신규점포를 내는 것보다 값이 저렴하다. 임차료·인건비 등 유지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은행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거래’ 활성화도 무인자동화기기가 자리 잡는 배경이다. 중장기적으로 지점 통폐합이 불가피한 지역에 무인자동화기기 대체가 검토되고 있다.

◇무인자동화기기 사용 어려운 고령층···전문가 “맞춤형 서비스 필요해”

하지만 무인자동화기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이 인터넷뱅킹에 이어 또 다른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무소속 장병완 의원실이 발간한 ‘고령자 금융 디지털 소외해소를 위한 정책방안’를 보면 70대 인터넷뱅킹 이용률은 5.4%로 저조했다. 명동 인근에 있는 한 은행에서 만난 80대 여성 B씨도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익숙하지만 노인들 입장에선 뭐든 새로 배워 다루기도 어렵고 불편함만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고령층이 기존 ATM도 잘 사용하지 못해 영업점 창구를 주로 활용한다”면서 “무인자동화기기 도입으로 ATM은 물론 영업점을 줄이는 추세라면 은행이 찾아가는 서비스나 노인복지관을 통한 기기활용 교육 등 고령층을 위한 상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 영업점도 감소 추세다.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국내 점포 수는 2015년 5093개에서 지난해 4682개까지 줄었다. 5대 은행은 비용 절감 및 효율화 차원에서 올해 초까지 국내 점포 89개를 통폐합할 계획이다. 기존 ATM도 줄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국내 은행들이 보유한 ATM 수는 총 3만7673개로 1년 전 3만9980개보다 2307개 감소했다. 하루 평균 6개 이상이 줄어든 셈이다.

한국소비자원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고령자들은 금융 거래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영업점 방문’을 가장 선호했다. 구역별 점포 수 및 ATM 수가 줄어들면서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의 금융 거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무인자동화기기가 새로 도입된 측면이 있어 낯설 수 있지만 기존 ATM과 사용법이 크게 다르지 않고 상담원과 화상 연결도 요청할 수 있다”면서 “기존 ATM의 역할을 보완하는 측면으로만 도입하고 있고, 영업점별로 기기 사용이 어려운 고객층을 돕기 위한 직원이 있기 때문에 이용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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