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에서 ICT 기업으로···사명 변경까지 고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텔레콤을 ICT 기업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최근엔 사명 변경까지 고려하고 있다. 박 사장이 SK주식회사 C&C 대표이사를 거치면서 쌓은 소프트웨어 노하우와 1위 기업으로의 시장 확대 한계가 배경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SK텔레콤이 유독 탈(脫)통신에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국내 이동통신 1위 사업자다. 과거 2G 시절부터 최근 5G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회선 통계에 따르면 5G 가입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466만8154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통신사별 5G 가입자 수는 SK텔레콤이 208만4388명으로 전체의 44.65%를 차지했으며, 그다음 KT 141만9338명(30.4%), LG유플러스 116만5391명(24.94%)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박 사장은 오히려 탈통신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올해 화두는 ‘ICT 복합기업’이다. 박 사장은 지난 1월 열린 ‘2020년 SK ICT 패밀리 신년회’에서 “이동통신과 신사업을 양대 성장 엔진으로 삼아 명실상부한 ICT 복합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또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국제 가전·IT 전시회 ‘CES 2020’에서 사명 변경 가능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박 사장은 “현재 60% 수준인 통신 매출이 ICT 분야 성장으로 50% 미만으로 내려갈 수 있다”며 “정체성에 걸맞은 이름 변경도 고민할 시점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SK하이퍼커넥터’ 등을 생각해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제부터는 시장에서 통신회사가 아닌 ‘ICT 복합기업’으로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선통신 1위 업체인 SK텔레콤이 탈통신에 적극적인 배경에 대해 업계는 30년 가까이 무선통신 분야 1위를 지켜오며 통신 외에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한국의 이동통신 보급률은 120%를 넘어선 상태다. 특히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경우 향후 추가 성장을 노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SK텔레콤의 탈통신 행보는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처음으로 통신시장에 탈통신이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아울러 하성민 전 SK텔레콤 사장도 ‘ICT노믹스’(ICT + Economics)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ICT 기업으로의 변모를 강조한 바 있다. KT와 LG유플러스도 함께 탈통신을 화두로 내걸고 있지만 SK텔레콤은 다르다. 

과거 전임 사장들이 강조했던 탈통신은 박 사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쟁사 대표이사가 제조업 출신인 것과는 달리 박 사장은 계열사 IT서비스 회사를 거치며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사업 경험도 쌓았다. 여기에 그는 인수 합병 전문가로 굵직한 협력 계약을 체결하는데도 전문가다.  

박 사장은 미디어 영역에서는 ‘옥수수’와 방송 3사 ‘푹’의 통합을 추진해 신규 OTT 서비스 ‘웨이브’를 출범시켰으며,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도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SK텔레콤은 오는 4월 출범하는 합병법인을 800만 유료방송 가입자를 보유한 종합 미디어 사업자로 키울 계획이다.

보안에서는 ADT캡스를 과감히 인수해 이후 ADT캡스와 자회사 NSOK을 합병했으며, 정보보안 기업 SK인포섹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보안 사업체를 SK텔레콤으로 결집시켜 융합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에서다. 커머스 영역에서는 11번가와 SK스토아를 커머스 사업부로 편입해 두 회사의 협업을 통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도록 했다.

박 사장은 ICT 기업으로의 변모를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카카오와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향후 통신·커머스·디지털 콘텐츠·미래 ICT 등 4대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해당 파트너십은 AI·택시호출·음원 등 여러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던 카카오와 제휴를 맺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박 사장은 최근에도 ICT 기업 간 초협력을 강조했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0 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박 사장은 “구글·아마존·애플 같은 글로벌 강자들은 AI 등의 분야에서 미래 ICT 미디어를 선점하기 위해서 서로 간의 초협력을 시작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우리들이 각자가 잘하는 것들의 장점을 키우는 동시에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과감한 초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경우, 30년 넘게 무선통신 1위 자리를 지켜 오며 이제는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이미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비통신 분야 키우기에 나선 상태다. 올해는 비통신 자회사 상장을 통해 탈통신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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