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공급확대, 마진율 급감···석화업계 다운사이클 금전부담↑
“버티는 소수, 과실 독차지”···패색 짙어진 SK이노, 불리한 포지션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LG와 SK가 자존심을 내 건 ‘배터리 전쟁’이 막대한 금액의 ‘로열티 협상’으로 치닫게 됐다. 천문학적 금액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높은 경쟁으로 수익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배터리업계의 현 상황에 비춰볼 때, 이번 협상이 마무리 된 이후 두 회사 간 온도차는 상당할 전망이다.

18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배터리 시장은 산업성장 초기단계인 까닭에 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과거 반도체 시장이 부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숱한 기업들의 치킨게임 끝에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 되는 소수의 기업들이 과실을 독점하고, 이들 업체를 중심으로 배터리 업계 전반이 재편될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이 요청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판결을 수용함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이번 판결로 양측 소송은 오는 10월 5일 최종판결만을 남겨뒀다. 패색이 짙은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상당히 뼈아프게 됐다. 패소할 경우 향후 배터리관련 주요 부품·소재 등 품목의 수입이 불가능해진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에 1조9000억원을 투입해 배터리생산라인을 건립 중이며, 추가로 1조원을 들여 2공장 건립계획을 세웠다.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재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적다. 결국 SK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판결 전까지 LG화학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LG 측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게다가 재판의 승기까지 잡은 상황이기에, SK보단 상대적으로 선택지 폭이 넓은 상황이다. 다만 국내외 정세 등을 감안했을 때 두 회사가 결국 로열티 협상에 돌입하게 될 것으로 보는 시선이 우위를 점한다. ITC의 예비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이번 소송의 본질은 30여 년 동안 축적한 지식재산권을 정당히 보호하기 위함”이라 설명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 두 회사는 재판진행과 별개로 합의점 도출을 위한 논의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이 로열티 지급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천억원에서 1조원을 웃도는 협상이 전개될 요량이다. 법적 소요비용과 배상금 등도 더불어 협상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한정된 금액만 일시에 받고, 제품판매로 발생한 이익금 일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 LG화학은 지난 2017년 중국의 ATL을 상대로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LG 측은 ICT의 최종판결 직전 로열티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LG화학은 ATL 측으로부터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매출의 3%를 기술로열티로 지급받고 있다. 이 같은 전례를 봤을 때, 수천억원대 일시금과 더불어 매출 일부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과 합의를 바탕으로 자금을 확보하게 될 경우, LG화학의 자금여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LG화학은 글로벌 3대 배터리 시장으로 손꼽히는 △유럽 △중국 △북미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감행 중이다. 당초 계획보다 자금여력이 높아지게 되면, 추가적인 투자에도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현재 LG화학의 시장점유율은 글로벌 3위다. 이번 로열티를 바탕으로 배터리 시장 상위권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여지 또한 커지게 됐다.

점유율 10위 SK이노베이션은 위축될 여지가 크다. 현재 미국과 유럽 생산라인 증설을 계획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전적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시금이 아닌 매출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게 될 경우도 문제다. 배터리 가격이 지속적으로 급감하는 상황에서, 수주경쟁까지 더해져 마진율이 저조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로열티 부담까지 안게 되면, 최악의 경우 팔수록 손해 보는 상황에도 처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사업에서 실익을 내기 위해선 경쟁사들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경쟁력도 유지해야겠지만, 사업초기에는 금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면서 “초기 적자를 장기간 버텨낼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점유율 상승을 위해 지속적인 증설 등 방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시사했다.

이어 그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 비슷한 요건을 갖췄음은 분명하나, 그동안 배터리 사업을 뒷받침 해오던 각 회사의 석유화학사업이 다운사이클로 접어들면서 자금압박은 보다 심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결과적으로 이번 소송을 통해 한 곳은 기회를, 다른 한 곳은 더 큰 부담을 짊어지게 돼 향후 사업 전개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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