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철회 않는 日에 전문가들 “일본 국제법 위반 상태 유지···WTO 제소 재개해야”
정부 지소미아 종료 카드 거론···’지소미아 종료 찬성’ 여론 반대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2019년 12월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2019년 12월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한국 대상 수출규제 조치 철회에 대해 진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 재개와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아 국제법 위반 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지소미아 종료 가능성을 거론했다. 국내 여론은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에 대해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지소미아를 종료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았다.

지난해 11월 22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와 일본 대상 WTO 제소 절차의 조건부 정지를 선언했다. 이는 향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전제로 했던 조치였다.

당시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일 양국 정부는 최근 양국 간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며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는 가시적인 수출규제 철회 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 반도체 등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하고 있고 백색국가에서도 제외중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6일 도쿄에서 한일 국장급 ‘수출관리 정책대화’에서 양국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후 양국의 추가 대화는 열리지 않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에 참석 중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수출규제, 강제동원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강 장관은 일본 수출규제가 조속히 철회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이 문제의 해법은 피해자 동의가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모테기 외무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국제법 전문가들은 정부가 WTO 제소 절차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일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국제법 박사)은 “일본이 수출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이 국제법상 통상법 위반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일본에 대한 WTO 제소 절차 재개를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강화에 대응해 WTO에 제소하면서 양자협의 요청서에 일본의 WTO 협정 의무 주요 위반사항 3가지를 담았다.

우선 정부는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해 한국만을 특정해 포괄허가에서 개별수출허가로 전환한 것은 WTO의 근본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최혜국대우 의무에 위반이라고 했다.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유지 금지 의무도 위반이라고 봤다. 또 정부는 일본의 조치가 정치적 이유로 교역을 자의적으로 제한한 것이라며 이는 무역 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다고 했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 무역협정팀 부연구위원은 “현재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사실상 완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이 반도체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를 철회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외교적 방법에만 기대선 해결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WTO 규범을 위반했다며 WTO 분쟁해결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한일 양자 간 통상 현안에서 외교적 해결이 아닌 국제법을 통한 해결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도 외교적 방법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검토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소미아 종료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한일 수출 당국 간 대화가 있었지만 우리가 바라는 지난해 7월 1일 수출규제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분명히 아니다며 “우리는 언제든지 지소미아 종료 효과를 재가동할 권리가 있고 국익에 기반해 이 권리를 행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특히 이와 관련해 지소미아 종료 의견이 우세한 여론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504명을 대상으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했다.

이에 ‘충분히 기다렸으니 이제 종료해야 한다’는 응답이 44.9%로 나타났다. ‘충분히 기다리지 않았으니 아직 종료해선 안 된다’는 응답은 37.9%였다. ‘모름·무응답’은 17.2%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한국 대상으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하고 우호국에 수출통관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체계가 불충분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지난해 5월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표한 ‘위험 행상 지수(Peddling Peril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17위, 일본은 36위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체계가 일본보다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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