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 단협 유효기간 확대해 ILO 권고 역행 지적···‘특수고용노동자·간접고용노동자 개선’도 누락
경영계는 노조 권한 확대 우려···“쟁의 행위 시 대체근로 허용해야”
향후 ‘비준 후 입법’ 등 처리 과정 주목···20대 국회 임기 끝나면 비준안·입법안 자동 폐기

이미지=조현경 시사저널e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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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등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준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FTA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사회 평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ILO 핵심협약이란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협약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에 관한 8개 협약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관련 4개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관련 비준안과 이를 반영한 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올해도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부의 ILO 기본협약 관련 비준안과 이를 반영한 법 개정안의 내용도 쟁점이다. 노동계는 정부안이 국제사회의 노동권 기준에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노조에 편향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유럽연합은(EU)은 한-EU FTA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구성된 전문가 패널에 한국의 FTA를 위반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한국이 결사의 자유 등 ILO 핵심협약 비준과 준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FTA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 패널은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과 준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FTA 규정을 위반했는지 심의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30일 활동을 시작한 전문가 패널은 구성 후 90일 안에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그리고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제105호 등 4개 핵심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제105호를 제외한 10월 제87호와 제98호, 제29호 등 3개 핵심협약의 비준 동의안과 이를 반영한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ILO 핵심협약의 비준과 관련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반발하면서 아직 처리되지 못했다. 현 20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면 비준안은 자동 폐기된다.

전문가 패널이 향후 보고서에 한국이 FTA를 위반했다고 결론을 낼 경우 한국은 FTA 역사상 최초로 노동 관련 규정을 위반한 국가가 된다.

◇ “정부안 '단협 유효기간 확대' 등 ILO 권고 역행”···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도 제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ILO 기본협약 관련 비준안과 이를 반영한 법 개정안 내용은 국제적 기준에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입법안에 대해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기준에 미흡하고 제105호가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조의 권한이 커질 것을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ILO 제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제 98호 협약(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제29호(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협약)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했고, 같은해 10월 7일 국회에 접수했다.

또 정부는 이 협약과 관련해 경사노위의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한 노조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등 3개 법률에 대한 정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사의 자유 관련 정부 입법안의 주요 요지는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 ▲전임자 급여지급·근로시간면제제도 ▲공무원‧교원 노조가입 범위 확대 ▲단체협약(단협) 유효기간 상한 2년에서 3년으로 확대 ▲사업장 점거 제한 ▲교섭창구단일화제도 개선 등이다.

자료=고용노동부, 이미지=조현경 시사저널e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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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노동계는 정부 입법안 내용이 국제적 기준이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ILO권고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부 개정안이 단체협약(단협) 유효기간 상한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한 것은 ILO와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13일 민주노총 사무금융 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에 따르면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단체협약 기간의 상한선을 폐지하는 등으로 단체협약의 존속기간이 장기화되도록 하는 법령 개정안은 노동조합의 교섭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최대 한도 연장은 사실상 단협 유효기간 확대로 이어진다며 “3년이 지나서야 단체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개정안 중 ‘사업장 내 생산 및 주요 업무시설 등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 내용도 ILO 핵심협약과 상관 없으며 기존의 쟁의권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ILO는 직장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헌법상에도 쟁의권은 본질상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에서 쟁의행위를 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산 기타 주요업무 관련 시설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는 사실상 100% 금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주요업무 시설을 부분적, 병존적으로 평화롭게 일부 점거하여 피켓팅 등을 하는 것도 금지될 수 있다. 사용자가 문제된 장소를 주요업무 시설에 해당한다고 강변하면서 직장점거를 일체 금지 하는 등 오·남용의 위험성도 있다”고 했다.

특히 정부 개정안은 ILO가 지속적으로 권고한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노동자, 노조설립신고 등에 관한 내용을 누락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ILO권고에 따른 개선방안으로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확대, 노동3권 보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간접고용노동자의 경우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 확대, 원청 사용자성 인정, 교섭권 보장 등이 제기된다. 노조설립 신고의 경우 설립신고 반려규정 삭제, 신고주의에 맞는 제도운영이 요구된다. 이러한 사안 모두 정부 입법안에는 빠져있다.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 관련 비준과 법 개정을 동시에 처리하면 입법이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게 된다며 비준부터 한 후 ILO 권고안에 맞춰 입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ILO 핵심협약과 관련해 ‘비준 후 입법’에 나설지 ‘비준과 입법을 동시에 처리할지’ 등 정부와 국회의 처리 과정이 주목받는다.

◇ 경제계 “해고자는 노조 가입과 단체교섭 참여 제한해야”

반면 경영계는 정부의 ILO핵심협약 관련 개정안에 대해 노조 권한 확대 등 다른 면에서 우려를 보였다.

우선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인정한 정부 개정안에 대해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별 노사관계가 일반적인 우리나라는 회사와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없는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과 단체교섭 참여가 제한되는 것이 타당하다”며 “해고자의 감정에 치우친 태도와 상호불신으로 인해 합리적인 교섭이나 조합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쟁의 행위 시 대체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현행법상 대체근로 금지는 기업의 재산권, 영업의 자유와 같은 헌법상 권리를 제한한다. 쟁의 행위 시 대체근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은 계속 유지하고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보다 엄격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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