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발표 前 WTO 제소···1년 간 잠잠하던 日, 갑작스레 ‘양자협의’ 합병이슈 슬며시 꺼내
업계 “반대명분 쌓기위한 것”···6개국 승인 결합심사기간 장기화 시 대우조선 불확실성 확대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에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2018년 11월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을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던 일본이 최근 한국과의 양자협의를 개시했는데, 이번 합병건도 포함시킨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양자협의란 WTO 제소 이후 분쟁해결절차의 첫 단계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소송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양국 조선업 특성 상 서로 간 침해요인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한국·일본 등 6개국에서 진행 중인 두 기업 간 결합심사에는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했다. WTO 분쟁에 해당 사안을 결부시킴으로서 장기국면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두 회사의 합병은 6개 결합심사 대상국의 승인을 모두 얻어내야 가능하다. 현재까지 카자흐스탄만이 ‘찬성’ 의견을 냈다. 한·일 양국을 비롯해 중국·싱가포르·유럽연합(EU) 등 나머지 국가들의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와 EU 등은 과독점 등의 우려가 있다며 심층심사에 돌입했다. 클락슨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두 회사의 수주잔량 합계는 시장 전체의 20%를 웃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소가 ‘빅딜’을 방해하기 위함으로 풀이했다. 한 관계자는 “일본이 WTO에 제소한 것은 2018년 11월이었으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계획이 발표된 것은 지난해 1월”이라면서 “1년 넘게 제소와 관련해 별다른 반응이 없던 일본이 갑작스레 양자협의를 개시하고, 이에 두 회사의 합병 건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이 조선업에서 일본을 역전한 뒤부터 양국의 주력선종이 차별화되기 시작했음을 언급하며 “반대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결합심사에서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 상황에서 앞서 제소했던 내용에 합병을 결부시켰다는 의미다.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들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준 상황에서 벌크선 등 중소형 선박 위주로 조선업계가 재편됐다.

싱가포르와 EU의 심층심사 돌입으로 수개월여의 심사기간 지체가 예고된 상황에서, 일본의 이번 몽니로 인해 두 회사의 결합심사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게 됐다. 문제는 심사가 장기화 될수록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대우조선해양에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합병계획 발표 전과 같은 수주활동이 가능하지만, 피인수주체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대우조선해양은 장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단골거래’ 중심으로 수주활동을 영위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선박 및 해양플랜트 주요 발주처는 안젤리쿠시스 및 산하 해운회사, 셰브론 등이다. 모두 30여년 거래해 온 고객사다. 업계에서는 심사 장기화와 같은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신규 거래처는 물론 단골들로부터의 수주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신동원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당초 현대중공업 측은 지난해 말까지 합병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결합심사 과정에서 결정된 추가심사 및 일본의 제소 등으로 인해 상반기 중 마무리 될 수 있을지 확답하기 힘들어졌다”면서 “합병주체인 현대중공업보다 피인수주체인 대우조선해양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합병이 성립 되더라도 지역사회와 노조의 반발 등이 있어 고난이 예상되지만, 실패할 경우 파장은 더욱 클 것”이라면서 “합병을 주도한 KDB산업은행 관계자들과 현대중공업 경영진들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며, 매각에 실패한 대우조선해양의 향후 거취를 놓고 각계의 진통 또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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