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史 이슈의 중심에는 ‘봉준호’가 있었다
  • 김도현 기자(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20.02.10 1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서 ‘황금종료상’···미국 아카데미선 ‘4관왕’ 쾌거
‘플란다스의 개’ 흥행실패 후 절치부심···‘살인의 추억’ 흥행감독 반열
‘괴물’부터 ‘옥자’에 이르기까지···블랙리스트·상영관 논란의 중심에도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 /사진=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 / 사진=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쾌거를 이뤘다.

10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이번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등을 석권했다. 작품상 수상은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다. 국제장편영화상과 작품상 동시 수상 역시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다.

일명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빅(Big) 5’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이 꼽힌다.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빅5’를 모두 수상한 영화는 ‘어느날 밤에 생긴 일(1935)’,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6)’, ‘양들의 침묵(1992)’ 등 세 편뿐이다.

각본상을 뺀 네 부문을 모두 석권한 영화를 그랜드 슬램이라 일컬을 정도로 미국 내에서도 의미 깊게 여겨질 정도인데, 기생충은 각본상을 제외하더라도 두 부문에서 수상했다. 현지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시상식에서 그간 비주류로 분류돼 온 아시아 영화로서 거둔 사상 최초의 수상이라는 점이 의미 깊다고 전문가들은 소개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제작됐거나 개봉된 작품들만이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이번 시상식의 경우도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LA 극장에 상영된 영화들만을 후보로 삼았다. 다만 영화산업의 중심지에서 개최되는 만큼 미국뿐 아니라, 여느 국제영화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상을 지니는 시상식이다.

이날 시상식 생중계 진행을 맡은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기생충의 이번 수상은 아카데미가 나아고자 하는 지향점을 알리게 된 계기”라고 시사했다. 아카데미 측은 2015년부터 다양성을 추구한다며 한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들의 영화인들을 회원으로 위촉해 왔다. 국내에서는 임권택·봉준호·박찬욱·이창동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최민식·이병헌·하정우 등이 위촉됐다.

이번 기생충의 수상이 한국영화를 넘어 아시아영화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주최 측의 노력에도 결실을 맺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같은 변화를 이끈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사(史) 첫 한 세기의 마지막 페이지와 새로운 한 세기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이 됐다.

사실 봉 감독은 영화인의 길을 걸어온 뒤로 늘 도전적이며 각종 논란과 이슈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다양한 영화의 연출부와 조감독 생활을 거친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2000년 입봉했다. 평단의 긍정적인 반응과 달리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는데, 이에 절치부심한 그는 2003년 두 번째 장편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오늘날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명명됐으나, 당시만 하더라도 미제사건이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영화를 준비 중이란 소식에 영화계 안팎의 우려를 샀던 것 또한 사실이다. 범인 없는 스릴러영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봉 감독은 이 같은 우려를 무색하게, 특유의 세밀함과 할리우드와 다른 방식의 한국형 스릴러를 개척했다.

이후 2006년 영화 ‘괴물’을 통해서 본인의 첫 ‘1000만 영화’를 배출했다. 미군의 오염물질 무단방류를 모티브 삼아 서울의 중심인 한강에 괴물이 출몰했다는 신선한 접근방식을 바탕으로, 한 가족의 드라마적 서사와 결부시켜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일궈냈다. 국내 영화사에선 보기 드물었던 괴수영화였으며, 여전히 한국 영화 최고의 괴수영화로 꼽힌다.

이 영화를 통해 봉 감독은 박근혜정권 당시 작성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미국에 비판적인 기조였다는 점과, 봉 감독의 첫 할리우드 진출 작품 ‘설국열차(2013)’를 통해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저항운동을 부추겼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지금으로선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특히 설국열차의 경우 ‘자본주의의 메카’라 불리는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올해 방영을 앞두고 있다.

2017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영화 ‘옥자’를 통해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작품성에 있어선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극장 스크린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다는 점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당시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영화계에서도 “영화는 스크린에 걸려야 한다”는 주장과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반응으로 나뉘기도 했다.

당시 국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체인들은 옥자의 상영을 보이콧 했다. 전국적으로 불과 100여개의 극장들만이 옥자를 상영했다. 30여만명의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옥자는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역시 봉준호’란 찬사를 이끌어냈다.

한편, 봉 감독의 영화인생뿐 아니라 한국 영화사에 기념비적으로 평가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영화 ‘주디’의 르네 젤위거와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각각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브래드 피트와 로라 던 등은 각각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와 ‘결혼이야기’를 통해 남우·여우 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기생충과 함께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됐던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촬영상(로저디킨스),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 등을 수상했다. 가장 많은 후보를 올린 영화 ‘조커’는 남우주연상과 함께 음악상을 배출했다.

김도현 기자
산업부
김도현 기자
ok_kd@sisajournal-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