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시사저널e와 인터뷰···“사태 장기화되면 식량난 겹칠까 우려”
잔류 교민 대상 물품 배송 및 의료서비스 제공도 준비 중···중국 당국, 의료 지원 막을까 우려도 

지난 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도심 외곽쪽으로 가는 길목이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 사진=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지난 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도심 외곽쪽으로 가는 길목이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 사진=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남은 교민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귀국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식료품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12월 8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 격인 후베이성 일대에는 여전히 우리 교민 200여명(정부 추산)이 남아 ‘바이러스 공포’와 두달째 맞서 싸우고 있다.

7일 시사저널e는 정태일(29)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과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현지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 사무국장의 답변에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들이닥칠 불안감이 더 짙게 배여 있었다.

지난달 31일과 1일 두 차례에 걸쳐 우한시를 비롯한 후베이성 일대에 고립됐던 우리 교민 700여명은 정부가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후베이성 일대가 중국 정부 방침으로 봉쇄되자, 전세기에 탑승하지 못한 상당수 교민들이 여전히 현지에 잔류해 있는 상태다.

우리 정부 추산 잔류 교민은 200여명 정도다. 정 사무국장은 “(잔류 교민 중) 후베이성 한인회에 직접 연락이 닿은 교민들은 우한시 89명을 포함해 130여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5세 미만의 영유아가 15명, 6~13세 어린이는 9명에 임신부도 2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탑승 시간 놓친 잔류 교민, 여전히 귀국 의사”

/사진=정태일 중국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사진=정태일 중국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정 사무국장에 따르면 애초 한국행 전세기 운행이 예고됐을 때 배우자가 중국 국적자인 교민도 상당수가 탑승 신청을 했다. 하지만 ‘중국 국적 배우자는 탑승 할 수 없다’는 중국 정부 방침이 알려지면서 한국행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무국장은 “중국 당국이 중국 국적을 가진 자는 (이중국적이라도) 해외 전세기를 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가족 때문에, 일부는 현지 사업으로 귀국을 포기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전세기 운항 뒤 현재에도 남아있는 교민들 중 상당수는 아직 귀국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정 사무국장은 전했다. 통행증 문제로 1, 2차 전세기 때 집결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사무국장은 한국 교민을 돕는다는 이유로 남은 또다른 잔류 케이스다. 그는 3년 전 우한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한달 전인 지난해 11월 후베이성 한인회에 합류했다. 우한대 한인회 학생회장을 맡을 당시 최덕기 후베이성 한인회장과 인연을 맺은 게 계기가 됐다. 

그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우한시에 남아 주우한총영사관 측과 협조해 잔류 교민들을 돕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전세기를 타고 귀국할 수도 있었지만 현지에 남았다”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여자친구는 왜 남으려고 하느냐며 귀국을 권유했지만 남아 있는 교민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과 한인회 측은 중국 SNS인 위챗(Wechat)으로 단체 대화창을 만들어 잔류 교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 각 가정집마다 자택에서 자가격리하면서 외출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라 잔류 교민들을 이어주는 몇 안되는 연결고리다. 

지난 1월 31일 한국 교민을 나르던 1차 전세기 운항 당시 공항 앞 전경. / 사진=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지난 1월31일 한국 교민을 나르던 1차 전세기 운항 당시 공항 앞 전경. / 사진=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 일부 도로 봉쇄 풀였지만···커가는 식료품 부족 등 불안감

현지에서는 공급되는 식료품과 방역용품이 시간이 갈수록 부족한 상황에 달하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일부 도로의 봉쇄를 해제해 중대형 마트들이 소량의 물자는 운영하는 것은 허락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사무국장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식료품에 대한 문제가 시급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현재 운영 중인 마트들이 언제 봉쇄될지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잔류 교민들의 우려는 ‘신종 코로나 감염’이다. 정 사무국장은 “남아있는 교민들은 혹시 모를 신종 코로나 감염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행히 한인회 측은 남아있는 교민들 중 감염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

일단 주우한총영사관과 한인회는 남은 교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 구호물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1, 2차 전세기가 우한시에 왔을 때 함께 도착한 구호물품이다. 후베이성에서는 이미 모든 대중교통 운영이 중단된 가운데, 일부 시장이 문을 열고는 있지만 주요 방역용품은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 사무국장은 “1, 2차 전세기에 정부 및 민간단체 등에서 보내준 구호용품을 인계 받아 지난 3일에 수량을 파악하고 4일부터 교민들에게 구호물품을 전달 중”이라면서 “1, 2차 전세기 파견 때 같이 온 구호물품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지 교민 대상 의료장비 지원 기다려···“교민 받아준 아산·진천 주민께 감사”

현지 한인회는 후베이성 일대에 임시 의료 서비스 센터를 연다는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 확진 상태는 아니지만, 감기 유사 증상 등을 보이지만 병원을 가기 힘들어 하는 교민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해 최덕기 후베이성 한인회장은 최근 청와대를 방문해 의료장비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한인회 측은 “정부가 의료장비를 지원해주면 중국 내에서 한국 의사를 섭외해 임시 의료 서비스 센터를 열고 운영할 예정”이라며 “한국 측에서 의료장비가 중국으로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 지원마저도 중국 당국이 불허할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외국 의료진이 자국 내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현지에서 전세기 배치가 늦어진 것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고 정 사무국장은 전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가장 먼저 중국 정부 측에 (전세기 운항을) 건의한 것으로 아는데 순위가 밀린 것에 많은 의문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1, 2차 전세기 배치가 무사히 됐다는 것이 더 다행스럽고 우리 정부와 대한항공, (중국 교민을 받아준) 충남 아산·충북 진천 지역 주민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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