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은행 영업점에서 여러 은행 계좌 관리···금융 접근성 향상 기대
대출 대환 등 고객 유치 경쟁 심화 전망···일선 영업점 업무 과중 우려도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모습/사진=연합뉴스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모습/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의 오픈뱅킹 오프라인 확대 정책으로 인해 은행권이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하나의 은행에서 여러 은행의 계좌를 관리할 수 있는 ‘오픈뱅킹’이 영업점으로도 확대될 경우 은행 간의 고객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뱅킹 확대로 인해 오프라인 영업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면 은행의 디지털 전환, 영업점 축소 정책 등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은행 간 경쟁 심화, 일선 직원들의 업무 부담 가중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 영업점에 오픈뱅킹을 확대해 적용하는 ‘오픈뱅킹 고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르면 상반기 중 연구용역을 마친 후 하반기 중에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

오픈뱅킹은 고객이 한 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모든 은행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지난해 10월 시범 실시와 함께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12월 안정적으로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은행 영업점에서는 현재 고객 동의 하에 타 은행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까지만 가능하다. 오픈뱅킹 서비스가 확대 적용될 경우 가입 상품 조회·해지 등의 서비스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오픈뱅킹 확대를 통해 금융 소외계층의 서비스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행 영업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 고객들이 좀 더 다양한 은행의 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으며 모바일뱅킹에 취약한 고령 고객들도 오픈뱅킹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의 입장은 다소 복잡하다.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들을 상대로 자사의 상품을 적극적으로 권유해 타 은행 고객을 공격적으로 유치할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은행에 기존 고객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액 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모바일뱅킹과는 달리 오프라인은 고액 거래도 많기 때문에 고객 이탈로 인한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성 향상 측면에서 긍정적인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모바일 오픈뱅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상품을 옮김으로써 대출 금리가 0.1~0.2%포인트 낮아진다고 하면 어느 누가 그걸 거부하겠느냐”며 “충성 고객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을 위해 영업점 수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신한, KB국민, 하나, 우리, NH농협)의 국내 영업점 수는 3885개로 지난 2016년 9월 말(4230개)에 비해8.2%(345개)나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영업점의 역할이 커지게 되자 오프라인 영업에 대한 은행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영업 경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품 경쟁력이겠지만 접근성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른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가까운 영업점에 들렀다가 좋은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업무의 비대면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영업점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통폐합 일변도를 유지해야 할지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일단 업무 범위가 어느 정도 오픈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은행들의 영업점 운영비용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선적으로는 은행 간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생각보다 은행 간의 고객 이탈이 심하지 않을 경우 서로 협업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며 “한 은행에서 여러 은행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점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법 등을 사용해 비용 절감에 나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실제 영업점 업무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은행 간 경쟁 심화와 실적 압박 가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타 은행 고객을 새롭게 유치하기 위한 은행들의 노력이 일선 은행원들의 업무 과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실적 위주 영업으로 인한 불완전판매의 위험도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 중인 박모씨는 “본인의 동의 하에 거래를 진행하는 것이겠지만 금융 지식이 부족한 고령층 고객을 대상으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임의로 상품 판매 등의 업무를 진행할 경우 일부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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