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작성’ ‘지원 중단’ 부분 유죄 확정···“의무 없는 일 하게 한 때”
‘명단 전달’ ‘현황 보고’ 부분은 무죄 취지 파기환송···“직권남용 아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사진=연합뉴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특정 인사를 지원 대상에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한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이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일부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다. 그동안 쟁점이 돼온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살펴 좁혀 판단하라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함께 기소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건 역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조 전 장관은 이 사건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었다.

전합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하고 지원을 중단한 행위가 법에서 금지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문체부 등에 이미 작성된 블랙리스트를 보내도록 하거나, 문화계 지원 사업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것은 직권남용죄로 보기 어렵고 원심이 법리를 오해해 심리가 미진한 잘못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파기환송에 따라 김 전 실장의 최종 형량 확정도 미뤄지게 됐다. 일부 혐의가 무죄 취지로 결론난 만큼 기존 징역 4년의 형량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김 전 실장은 ‘문화예술계가 좌편향 돼 있어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특정 정치성향의 인사들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각종 사업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형법상 공무원은 직권을 남용해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5년 이하의 징역, 3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김 전 실장은 1심에서 지원배제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1급 공무원에 사직을 강요한 혐의가 추가로 유죄로 인정돼 1심보다 높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수석도 1심에서는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지원배제에 관여한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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