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변호사 “최초 패소 사례 책임 규명 못 하게 방해···론스타 ISD도 비공개 우려”

/ 그래픽=금융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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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한국이 첫 번째 패소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판정문을 공개해 달라는 요구에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패소 확정에 따라 730억원의 국가 예산이 타국 기업에 넘어가게 됐지만, 시민들은 구체적인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다. 정부가 민간 차원의 책임규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국제통상전문가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10일 이란 다야니 가문이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ISD의 판정문을 공개해 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했다.

금융위는 “정부는 다야니 측과 모든 중재 서류에 대해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했다”며 “이 문서 내용은 ‘외교 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로서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비공개 사유를 밝혔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송 변호사는 민간이 책임 규명을 못 하도록 금융위가 방해하고 있다며 판정문 공개를 촉구했다.

그는 “ISD 패소가 확정돼 730억원을 국가 예산으로 물어 주어야 하는데, 국민들은 그 이유조차 모른다”며 “이는 최초 ISD 패소 사례에서 책임 규명 못 하게 금융위가 방해하는 꼴이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또 “소송 상대와 비밀유지 약정을 비밀리에 체결하고 이를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위반이다”며 “이란 기업 영업 비밀 사항 제외하고 즉시 판정문 공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다야니 가문과 진행한 ISD에서 패소가 확정됐음에도 판정문이 공개되지 않자,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5조원대 IDS의 판정문도 미공개될까 우려하기도 했다. 송 변호사는 금융위를 상대로 이의신청 절차에 돌입했다.

◇ 대우일렉 M&A 사건 ISD 첫 패소···세금 730억이 이란 기업에

이 사건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운용하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우전자(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사명 변경)의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2010년 4월 세 번째 매각 시도에서 다야니 가문이 대주주인 이란 가전회사 엔텍합이 등장했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그해 11월 다야니 측과 5778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다야니 측은 채권단에 계약금으로 578억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한 달 뒤 인 12월 투자확약서 불충분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매수자 측의 잘못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다야니 측은 계약금과 이자 등으로 730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이 국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제 송사(訟事)인 ISD 중재신청으로 번졌다.

다야니 측은 우리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와 이란 정부 사이 투자의 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BIT)상 공정 및 공평한 대우 원칙 등을 위반해 인수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을 몰취해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유엔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대우일렉의 매각 과정에 채권단에 참여한 캠코가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인정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이 사건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는 등의 이유로 계약금과 반환 지연이자 등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 정부는 이의를 제기하고 지난해 7월 영국 고등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12월 22일 기각됐다. 이는 ISD에서 우리 정부의 패소가 확정된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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