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임금체계 호봉제→직무급제 개편 작업 돌입
현직 근로자들 사이서도 의견 엇갈려···노동계도 반발

정부가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와 능력 중심인 직무급제로 개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민간 기업이 직무급제로 전환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작·배포했다. 다만 호봉제가 가장 공고한 공공부문에 대한 대책은 쏙 빠져있어 정부가 노동계 반발에 ‘반쪽 정책’을 내놓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직무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설명 자료인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를 산업 현장에 배포하겠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 자료에는 ▲임금구성 단순화 ▲다양한 유형의 임금체계 개편 방법·사례 ▲직무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직무분석·평가 방법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도구 활용 방법 등이 담겼다.

앞서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을 줄이고 직무와 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면서 “올해는 직무 중심 인사관리체계 도입 지원 사업을 신설해 인사관리 전반에 대해 보다 내실 있는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일반 기업이 채택한 호봉제는 직급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구조다. 일반 사원보다 대리, 대리보다 팀장, 팀장보다 과장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식이다. 반면 직무급제는 업무성격과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다. 비교적 낮은 직급인 사원·대리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면 근속연수나 직급에 상관없이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고용부가 임금체계 개편 카드를 꺼낸 데는 호봉제가 과거 고도 성장기에 적합한 임금제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선 근속연수가 높아져 임금이 많아져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지만, 경제성장률이 연 3% 미만인 저성장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호봉제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높였다는 게 고용부 측 설명이다.

직무급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올해 집권 4년차를 맞은 만큼, 공약했던 정책을 하나씩 손보는 모습이다. 다만 임금체계 개편 정책이 우리나라에 정착할지는 미지수다. 임금체계 개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약 20년 가까지 추진됐으나 지금까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제도 중 하나여서다.

/ 자료=고용노동부, 표=이다인 디자이너
/ 자료=고용노동부, 표=이다인 디자이너

최근 들어 코트라, 석유관리원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다만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 매뉴얼에 공공기관, 민간기업이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했을 때의 대책은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공공기관의 직무급제 도입률은 1%로 전체 339곳 중 5곳에 불과하다. 

현직 근로자들 사이에선 직무급제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다수 인사담당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재직자들과 취업준비생들은 부정적인 모습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1일 기업 인사담당자 401명을 대상으로 직무급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5.5%가 “직무급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업무 중요도, 난이도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67.4%)”가 가장 많았고, 이어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할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어서(28%)”, “기존 급여 체계가 불공평했다고 생각해서(4.1%)” 등 순이었다.

반면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김예림(26)씨는 “작년 5월쯤 정부가 공무원 보수체계 발전방안에 대해 연구용역한다고 할 때부터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사람들은 언젠간 바뀐다는 걸 인지하고 있긴 했다”며 “인지하고 있었어도 직무급제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장점도 있겠지만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형평성이나 업무 부여 등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이윤아(25)씨는 “취업 카페를 보니까 일부 기업은 이미 도입된걸 보고 최근 들어 공공기관 취업 준비에 고민 중”이라며 “호봉제가 사라지면 굳이 공공기관에 취업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에 직무급제가 도입돼 임금체계 틀이 마련되면, 중장기적으로 민간기업까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에 직무급제가 확산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민간기업의 직무급제 전환을 노사 자율에 맡겼고, 고용부가 마련한 매뉴얼도 강제력이 없다.

노동계의 반발도 거세다. 한국노총은 “수십년간 유지돼온 연공급 임금체계를 연구기관의 용역 결과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과 발상은 자만”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깎기 위한 임금체계 개악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고 했다.

정부는 직무급제 매뉴얼은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관계자는 “이번 매뉴얼은 현장에 의무를 부과하는 게 아닌 참고자료고, 정부의 지원방안도 호봉제를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직무급을 민간에 압박하거나 강제하기 위한 취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사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을 줄이고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해 나갈 수 있도록 분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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