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석화가 카메라 앞에 섰다. 이번엔 가슴으로 낳은 딸 수화 양과 함께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윤석화가 촬영 중 눈물을 보였다. 올해 열네살이되는딸 수화 양이 꽃을 건네며 가슴에 꼭 안기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숨을 고르며 겨우겨우 촬영을 이어가나 싶더니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만것이다. 윤석화는 인터뷰에서 “수화가 내 딸로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하며 또 한 번 울었다. 딸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나는 모양이다. 반면에 수화 양은 촬영 내내 밝았다. 우는 엄마에게 “왜 울엉~?” 하며 애교스럽게 물었고, 이따금씩 코끝을 찡긋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영락없이 귀여운 소녀였다. 어떤 장면에서는 엄마보다 더 연예인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서보는 카메라 앞이었을 텐데도 꽤나 잘해주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윤석화가 한마디했다. “연예인 해도 될 법하죠?” 거참, 딸바보가 따로 없다. 알다시피 윤석화는 아들 수민 군과 딸 수화 양을 가슴으로 낳았다. 그녀에게 두 자녀는 외로웠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과거 방송에서 두 자녀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딸을 공개한 건 처음이다. 윤석화가 <우먼센스> 카메라 앞에 딸과 함께선 건 엄마니까 가능한 용기였다.

딸과의 촬영은 처음이죠? 큰아들 수민이와는 화보도 몇 번 찍어봤는데 수화와는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언젠가는 꼭 한 번 딸과 의미 있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죠. 수화가 워낙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처음엔 거절할줄 알았어요. “엄마가 수화랑 의미 있는 사진을 남기고 싶어”라고 말하니까 단번에 좋다고 하더군요. 시원시원한 반응에 놀랐는데, 오늘 촬영하며 딸의또 다른 모습에 놀랐어요.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요.(웃음) 제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예쁘지 않아요? 사극에 출연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한국적인 미모인 것 같아요. 한복이 이렇게 잘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데….(웃음)

촬영 중간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어요.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나요? 수화는 제게 약점 같은 존재예요. 뭘 해도 늘 신경 쓰이죠. 이유는 하나예요. 내가 늙은 엄마라서. 만약 제가 평범하게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면 수화는 손녀뻘일 거예요. 친구한테는 갖고 싶은 걸 편하게 말하면서도 제게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아이예요. 수화에게 전 어려운 엄마인 거죠. 제가 아무리 같은 눈높이에서 말하고,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는 친구같은 엄마이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또 수화가 워낙 혼자서도 잘하기 때문에 아들에게 더 신경을 쏟았어요. 오빠에 비해 사랑을 못 준 것 같아 짠한 마음이 있죠. 그래서 늘 미안했는데 그런 감정이 오늘 촬영하면서 터진 것 같아요.

수화도 그 마음을 아는 것 같은 눈치였어요. 매일 밤 수화의 뺨에 뽀뽀를 해요. 잠자기 전에 하는 마지막 의식 같은 거죠. 그러면서 “수화가 엄마 딸이라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사랑해”라고 속삭여요. 우리 딸도 제가 미안해한다는 걸 아는지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라고 말해줘요. 때로는 너무 일찍 철든 것 같아 더 미안해요.

어떤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나요? ‘내 자식이라고 해서 내 소유물처럼 여기지 말자’고 생각해요. 한 인격체일 뿐 제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해 그 사랑을 베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행복을 누렸으면 하고요. 문제는 접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려면 부모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한번은 수화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아이가 특별한 것 같으니 멘사에 가입시키자는 제안이었죠. 결론부터 말하면 거절했습니다. 저는 내 딸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되지 않을뿐더러 아이가 특별하다고 해도 그 굴레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아요. 내 아이가 평범한 가운데 자기 할 일을 잘해내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저라면 멘사에 가입시켰을 겁니다. 물론 저도 후회스러운 적은 있어요. 정말로 천재성을 지닌 아이라면 제가 그걸 막은 셈이잖아요. 제 순간의 선택으로 아이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후회스럽더라고요. 하지만 천재로 사는 게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진정으로 천재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커서도 얼마든지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자기 나이에 맞는 교육을 받고, 사회성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하게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면 수화가 손녀뻘일 거예요.

수화에게 항상 ‘엄마가 나이가 많아서 미안해’라고 말해요.

그런제 마음을 아는지 수화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죠.

때로는 너무 일찍 철든 것같아 속상해요.“

 

 

수화가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겠다고 했을 때 쿨하게 반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면에선 쿨해요. 나쁜 일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건 최대한 하게 해줘요.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더 좋고요. 머리색이 보라색이면 어떻고 빨간색이면 어때요. 자기가 좋으면 그걸로 된 겁니다. 딸이 염색을 잘하면 제머리도 염색해달라고 하려고요.(웃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부모로 살아보니까 가장 어려운 게인내하는 거더군요. 자녀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어요. 그렇지만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지는 부모를 본 적이 있어요. 그건 폭력이에요. 그 아이는 부모로부터 화가 났을 때 물건을 던지는 법을 배운 셈이죠. 아까도 말했지만 집착이 아니라 사랑을 해야 해요. 사실 말처럼 간단한 건 아닙니다. 내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극복해내는 게 좋은 부모가 되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내 자식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선적으로 부모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물론 그것 또한 쉽지 않지요.

집안에서 엄마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집안의 대통령은 엄마라고 생각해요. 아빠는 국무총리고요. 남자는 대쪽 같은 사람이라면 여자는 품는 힘이 있어요.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실천하느냐가 자녀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어떻게 보면 희생인데, 그걸 억울하게만 생각하면 안 돼요. 아빠는 못 하는, 그러니까 엄마만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죠. 아름답지 않아요? 한 생명을 키워낸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한 겁니다.

마치 수련하는 것과 같아 보여요. 맞아요. ‘애미’가 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하고, 남편 뒷바라지까지 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가끔은 ‘난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좀 더 뻔뻔하게 살았어도 되는데…’ 싶은 생각에 울적한 날도 있었죠. ‘왜 희생만 해야 할까’ 싶어 화가 나는 순간도 있었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힘든 걸 해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더라고요. 우리 아들과 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결국 자식이 엄마를 키우는 셈입니다.

새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영화 출연을 제안받아 고민 중이에요. 앞서 말한 ‘엄마의 희생’을 주제로 한 영화인데 메시지가 좋아요. 입양 홍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미국 순회공연(자선공연)을 계획 중이고, 새 공연을 연출할 계획이에요. 공연은 제 피를 뜨겁게 하는 작업이라 설렙니다. 기대돼요.

 

 

영국과 한국을 오가는 삶… 너무 바쁠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모두 영국에 있어요. 초등학교부터 영국에서 자랐어요. 아들은 내후년에 대학에 가고, 딸은 8학년(12~13세)인데 공부를 꽤 잘해 이름난 학교에 진학할 계획이고요. 타지에 있는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자주 영국에 갑니다. 한국에 스케줄이 없을 땐 영국에서 지내죠. 방학 땐 아이들이 서울에 오는데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그렇게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정말 부족하거든요.

아이들에게 기대가 큰 것 같아요. 꼭 뭐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없어요.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한 길을 걸을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할 뿐이에요. 가끔은 ‘이만큼 키워놨으니 이제 나도 훨훨 날고 싶다’고도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가 일당백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늘 뒤에서 버팀목처럼 있어주려고합니다. 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품 아니겠어요?

윤석화는 윤석화가 좋은가요? 좋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에 안드는 구석도 있습니다. 우선 이만큼 살아온 게 기특해요.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어도 씩씩하게, 단단하게, 담대하게 살아왔잖아요. 가끔은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늘 긍정적인 제가 참 좋아요.

한편으론 싫다고 말했어요. 언제부턴가 쓸데없는 책임감이 강해졌더라고요.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를 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을 책임지는 저를 보면서 스스로 지칠 때가 있었어요. 쉬운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같이 간 일행이 그게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양보해요. 또 한번 결정한 일에는 대책 없이 무모해요. 앞뒤 따지지 않고 밀어붙이죠. 그래서 손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또 그래요. 나를 안 챙기는 것 같은 내가 싫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 모습 또한 나인걸요.

어떻게 나이 먹고 싶나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에요. 보이는 모습이 예쁜 게 아니라 내면이 아름다운 할머니요. 속이 꽉 찬 할머니랄까요. 오늘 찍은 화보도 주름살은 전혀 걱정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좋아요. 다만 누가 봐도 멋있고는 싶네요. ‘와, 이 배우 참 멋있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거든요. 또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고 싶어요.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죠. 어떠한 일에 있어서 제가 좋은 뜻으로 보탬이 될 수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라고 배우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자랑질처럼 되는 건 싫어요.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죠. 최대한 자연인의 삶을 살면서도 일에서만큼은 최선과 열정을 담아내고 싶어요.

윤석화에게 아들과 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다. 그녀는 “사랑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엄마가 늙어서”라고 답했다. 비록 나이는 먹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결코 늙지 않았다.

 

“엄마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자녀를 실천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바뀌어요.

어떻게 보면 희생인데, 그것만큼 아름다운 희생도 없다고 생각해요.

한 생명을 쓸모 있는 인간으로 키워내는건 정말이지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일이에요.

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을 보일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품 아니겠어요?“

 

 

 

 

우먼센스 2020년 01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이예지 사진 이대원 의상 이미옥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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