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사유’도 특별연장근로 사유 포함해 노동계 비판
’근로자대표 선출 법적근거 마련‘ 보완책 논의도 멈춰
탄력근로시간 하루 단위서 ‘주 단위’로 바꿔 불규칙성 논란도

이미지=조현경  시사저널e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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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추진한 주52시간제가 올해 50인 이상 중소기업까지 적용됐다. 그러나 주52시간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가 근로시간 단축의 실효성을 낮추고 노동자들의 임금 손실 방지 및 건강권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논란은 올해도 노동계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15년 기준 연 노동시간이 207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장시간 노동하는 국가 2위다. OECD 평균은 1691시간이다.

이에 문 정부는 집권 후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과 생활의 균형 실현’을 국정과제로 삼고 법정 노동시간 준수 및 노동시간 단축,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주52시간제 도입과 이에 따른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부담 완화 지원이다. 이를 통해 연 2000시간의 노동시간을 2022년까지 1800시간대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정부가 주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 보완 입법들을 추진하고 도입하면서 근로 시간 단축의 취지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와 특별연장근로 ‘경영 사유’ 확대가 그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국회 논의 과정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질 수 있어서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 모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처리가 늦어져 기업의 준비현황 등을 감안해야 한다며 보완대책으로 주52시간제 정책과 관련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업무량 대폭 증가’ 등 경영상 사유를 포함했다. 이를 반영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에 대한 대처, 소재·부품 연구개발(R&D) 등으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했다. 현재 시행규칙에서는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 시에만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허용하고 있다. 이를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도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특별연장근로 확대 계획에 대해 주52시간제를 무색하게 하는 행정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17일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사용자 편의에 따라 임의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위험성이 있다”며 “원청이 갑자기 물량을 늘리거나, 주문량이 급증하는 경우에도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될 수 있다. 주 52시간제, 1주 연장노동 한도 12시간 노동시간 규제 원칙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자연재해나 사회 재난시 예외적으로 허용됐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가 지금도 제도의 취지에 반하여 남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근로기준법이 정한 ‘특별한 사정’이 아닌 이유로 주 52시간을 넘는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돼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장을 위한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제한제도가 무력화된다. 이를 막기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시행규칙 개정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계도기간 중에도 국회의 보완입법이 이뤄지면 그 내용을 감안해 정부의 보완조치도 전면 재검토‧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특별연장근로 경영사유 확대 행정 조치가 철회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특별연장근로 경영사유 확대 행정 조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특별인가연장근로는 노사합의를 바탕으로 자율성을 확대하고 기업자체의 연구개발 활동들도 포함되도록 사유를 넓게 인정해야 한다”며 “시행규칙이 아닌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안정적인 제도로 담보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내용의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 예고 기간은 오는 22일까지다. 노동부는 다음 달 초까지 개정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 국회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서 ‘근로자대표 선출 법적근거 마련’ 답보

사진은 지난 7월 18일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의 유연 근로제 관련 노사의견 청취 간담회 모습이다. /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7월 18일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의 유연 근로제 관련 노사의견 청취 간담회 모습이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여야가 주도해 경사노위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과정에서 ‘근로자대표 선출 법적근거 마련’ 등 보완 조치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대한 입법 조치에 합의했다. 이후 경사노위 논의에서 민주노총이 빠진 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국회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 나아가 자유한국당은 탄력근로제 1년 확대와 선택·재량근로제 정산기간 확대, 특별연장근로 적용기준 완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할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이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면 연장근로로 발생하는 임금 가산(할증) 금액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에는 일주일 52시간까지 임금 할증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경사노위 합의문과 한정애 민주당 의원의 관련 개정안은 노동자들의 임금 손실을 막기 위해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개정안과 합의문은 ‘다만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신고의무를 면제한다’고 했다. 이는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한 영세사업장과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불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경사노위 합의문과 한 의원안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했으나,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고 했다. 이 경우 노조가 없거나 교섭력이 약한 사업장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국회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 의무의 법적 실효성을 확보하고 노조가 없거나 교섭력이 약한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결정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근로자대표 선출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1년이 다 돼 가지만 국회의 근로자대표 선출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 논의는 진척이 없다.

탄력근로제 확대 과정에서 노동시간 불규칙성 확대에 대한 보완 필요성도 제기됐다.

경사노위 합의에서 탄력근로제에 대해 근로시간을 기존 하루 단위에서 주 단위로 정하기로 바꿨다. 이 경우 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1주 내에서 사용자가 일별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활이 불규칙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국회에서 논의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편 경영계는 유연근로제 도입 요건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에서 부서 대표나 팀 대표 동의 등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국장은 “유연근로제 등의 도입 요건을 팀 대표 동의 등으로 완화할 경우 노조가 없거나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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