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교육봉사하며 발달장애 디자인 사업 뛰어들어···서울디자인페스티벌·신촌물총축제·서울 시내버스 등 외부 캠페인 참여
"발달장애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편견을 깨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상 꿈꿔"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첫 인사는 흥미롭다. 7할 정도는 ‘명함’ 덕이다. 명함만 보고도 스타트업을 각인시켜야 하니, 일반 회사원의 명함과는 많이 다르다. 극도로 화려하거나, 극도로 간결하다. 남장원 키뮤스튜디오 대표의 명함은 특별했다. 발달장애 디자이너들이 그린 그림들이 명함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스타트업 ‘키뮤스튜디오’를 축약한 느낌이다.

남 대표는 서번트 증후군(지적장애, 자폐 등 발달장애)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사회 진출을 돕는 키뮤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키뮤스튜디오의 목표는 디자인으로 발달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앞으로는 디자인으로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는 남 대표를 지난 16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사무실에서 만났다.

◇ 그림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발달장애 디자이너들···비장애인 디자이너와 합작 통해 퀄리티 높은 작품 만들어

남 대표는 2008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남 대표는 그들이 그린 원화를 ‘다듬어지지 않는 다이아몬드’라고 비유했다. 색감이나 선이 남 대표의 마음에 와닿았다. 남 대표는 발달장애인의 디자인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은 충현비전대학 발달장애인 대상 키뮤디자인학과를 운영하며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있다. 졸업한 디자이너들은 키뮤스튜디오가 직접 고용한다. 키뮤스튜디오는 지난해 매쉬업엔젤스 등으로부터 시드투자를 받았다.

“예전에도 발달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기업들의 시도가 많았다. 바리스타, 비누 제작 등 손으로 하는 제품과 관련된 일자리가 많았다. 그러나 전문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곳은 많이 없었다. 우리는 발달장애 디자이너와 비장애인 디자이너가 합작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발달장애 디자이너의 장점이 각자 다르다. 자폐성 디자이너들은 꼼꼼한 그림과 특이한 색깔이 눈에 띄고, 지적장애 디자이너는 규칙에 맞게 그림을 그리고 소통이 쉽기 때문에 후반 보정 작업에 더 알맞다. 이 소스들을 디지털화해 비장애인 디자이너가 마무리한다.”

키뮤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발달장애 디자이너는 6명이다. 남 대표는 발달장애 디자이너에게 미술 교육을 직접 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 체험을 시키고 있다. 가상의 프로젝트로 광고 디자인 등 상업 디자인물을 만들기도 한다. 자폐 아동이나 50~60대 발달장애 노인을 대상으로도 미술 교육을 하고 있다. 대부분 그림 그리는 것을 순수하게 좋아한단다.

“기억에 남는 발달장애 디자이너가 많다. 중학생 때 만났던 한 친구가 있다. 지금은 20대 중반인데, 오랜 시간 디자인을 해 온 친구다. 10대 때부터 성장한 모습을 지켜봐서 그런지 애틋하다. 한 친구는 디자인을 하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게 해보니 원화 느낌이 좋았다. 키뮤 교육 과정을 통해 실제 작품을 만들었는데 대중이 이 친구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더라. 우리끼리는 여심 취향 저격 아티스트라고 한다. 그림에 관심 없었던 발달장애 친구들이 디자이너로 성장한 것을 보면 뿌듯하다.”

남장원 키뮤스튜디오 대표가 16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최기원 영상PD
남장원 키뮤스튜디오 대표가 16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최기원 PD

◇ “영어 못 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발달장애 바라봐줬으면···발달장애 디자이너들과 사회적 문제 해결할 것”

키뮤스튜디오는 서울시·한국장애인관광협회와 함께 ‘저상버스 함께 타기’ 캠페인의 디자인 작업,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신촌물총축제 등 외부 활동에 활발하게 참가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 굿즈 판매 외에는 졸업 전시를 정기적으로 한다. 지난해 부산 키뮤 전용 갤러리도 열었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전시를 하기도 했다.

“(캠페인 디자인 참여 등) 외부에서 제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 초기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영업을 뛸 만한 여력은 없다. 우리의 디자인 작품을 보고서 개발 의뢰나 콜라보레이션을 제의하더라. 우리는 발달장애 디자이너와 비장애인 일반 디자이너의 합작을 통해 대중적이고 퀄리티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나이키·스타벅스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와도 작업을 하고 싶다.”

키뮤스튜디오는 소셜 벤처이자 디자이너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남 대표는 “우리는 발달장애인을 돕는 회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키뮤스튜디오는 발달장애 디자이너들이 스스로의 재능으로 또 다른 사회문제를 풀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도움의 대상이 아닌 도움을 주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육성하는 셈이다. 장애라는 꼬리표를 떼고 난민·아동 등 사회문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싶다고 남 대표는 말했다.

“영어 못 하는 사람을 봤을 때 우리는 ‘저 사람은 영어 못 하네’라는 생각에서 그친다. 그를 기피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다를 뿐이지, 어떤 재능에서 월등히 뛰어난 부분이 있다.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영어 못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사회에 편견이 많다. 키뮤스튜디오나 정부, 기업, 비정부기구(NGO)도 이 편견 문제를 풀 수 없다.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풀어야 한다. 발달장애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년 키뮤스튜디오는 크라우드펀딩을 계획 중이다. 키뮤박스라는 소셜 플랫폼이 주제다. 첫 번째 주제는 ‘발달장애’다. 이들의 작품을 키뮤박스에 선물처럼 담아 대중에게 공개하려 한다. 더 많은 발달장애 디자이너를 고용해 인지도와 대중성을 높이는 것이 키뮤스튜디오의 장기 목표다.

“우리는 디자인으로 발달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사회적 목표였다. 이제는 디자인으로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 사회문제는 패션처럼 하나의 트렌드나 취향이 될 수 있다. 키뮤스튜디오가 국가나 제도가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달장애 디자이너가 더 다양하게 도전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