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무역협상단, 백악관서 1단계 합의 서명···“2단계 합의하면 관세 제거”
핵심 기술 쟁점은 2단계 협상 과제로 남겨져···향후 협상 험난 예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본격화한 지 약 18개월 만에 1단계 무역 합의문에 최종 서명하면서 공식적인 휴전기에 돌입했다. G2(Group of 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극적 합의하면서 세계 경제에 드리웠던 제약과 불확실성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다만 그동안 미중 갈등의 요인이었던 화웨이를 포함한 IT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보호 등에 대한 합의가 남아있다. 특히 미국은 1단계 무역합의 이행을 위한 지렛대로 ‘관세 장벽’을 활용할 계획이어서 미·중간의 갈등 불씨는 살아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를 포함한 양국 협상단은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1단계 무역협상 합의문 서명식을 한 뒤 오찬을 함께했다. 미중은 지난해 12월13일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한 뒤 합의문 작성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합의문에는 중국이 미국산 제품을 대규모로 구매하고 시장 개방 등의 조치를 취하는 대신, 미국은 관세를 매겨온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고 추가로 매기기로 했던 관세 부과를 철회한다는 게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년 동안 2000억달러(한화 약 232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추가 구매해야 한다. 중국이 구매를 확대하기로 한 미국산 제품은 공산품 약 800억달러, 에너지 500억달러, 농산물 320억달러, 서비스 350억달러 등이다.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금지, 농업·금융 서비스 등에 대한 중국 측의 시장 개방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부과할 예정이었던 16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1200억달러 규모의 다른 중국산 제품에 매겨온 15%의 관세는 7.5%로 낮추기로 했다. 다만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해온 25%의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대(對)중국 관세는 2단계 무역합의가 될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주요 내용 정리. / 표=이다인 디자이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주요 내용 정리. / 표=이다인 디자이너

1단계 합의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G2국가 1·2위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국면은 줄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덩달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중 정부도 합의 서명식에서 한 목소리로 “이번 무역 합의는 ‘역사적인 합의’”라고 평가했다.

관건은 중국의 이행 여부다. 구매처를 다변화한 중국이 단기간에 막대한 미국산 제품을 구매할지다. 만약 중국이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은 90일 이내에 관세를 재부과한다고 밝혀, 중국이 이에 보복하게 되면 무역전쟁 휴전이 깨지게 된다.

에너지 부문은 지난해 7~10월 미국의 대중국 원유 수출이 월평균 772만 배럴로 2017년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어서 수출을 늘릴 여지가 있다. 반면 농산물의 경우 추가구매가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론이 크다. 미중 무역전쟁 이전인 2016년에도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200억달러에 불과해서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 구매 약속을 달성하려면 미국산 제품을 미친 듯이 사들여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2단계 합의까지의 전망도 밝지 않다. 미중은 2단계 합의서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금지 등에 대한 세부 사항, 그리고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데, 이를 둘러싼 이견차는 여전하다.

화웨이 제재와 맞물린 사이버보안 이슈도 향후 협상 과제다. 물론 이번 합의문에 별도 챕터로 관련 내용이 거론되긴 했지만, 대부분 형식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중국 경제의 구조변화를 끌어내는 내용은 1단계 무역 합의문에 거의 담기지 않았다”면서 “앞으로의 협상에서는 가시 돋친 이슈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외신들은 1차 무역합의 서명에도, 정보기술을 둘러싼 냉전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중국 IT업체인 화웨이를 둘러싼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봤다. 미국 행정부는 물론 의회 차원에서도 화웨이는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날 미국 상무부가 최근 예산관리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자국 기업의 해외 지사들이 화웨이에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미 의회도 화웨이의 장비를 쓰는 나라와 정보 공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언론들도 이번 합의에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경계심을 보였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사설을 통해 “1단계 무역합의는 무역전쟁의 끝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매체는 “미중이 1단계 합의 성과를 달성했지만, 미중 간 무역 갈등 상황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며 “미국이 2단계 협상에서 보조금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이는 중국이 쉽게 양보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도 사설을 통해 “중국과 미국이 무역 관계에서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정상 궤도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 길에도 많은 도전과 난제가 있을 것”이라며 “무역전쟁의 원인이 됐던 요소 가운데 아직 많은 사안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2단계 협상은 오는 1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대선 일정 이후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식에서 “2단계 무역협상이 마무리되면 중국에 부과한 추가관세를 즉시 제거하겠다”며 “3단계 협상은 예상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만큼, 양국의 2단계 협상은 1단계 때보다 더욱 신중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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