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씨,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배심원 만장일치 무죄 평결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57)씨와 변호인단이 무죄 판결 선고 이후 법원 입구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주재한 기자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57·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씨와 변호인단이 15일 새벽 무죄 판결 선고 이후 법원 입구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주재한 기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이혼 전 배후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활동가 구본창씨(57)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씨가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동의 없이 공개한 것은 맞지만, 양육비 문제는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으로서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이창열 부장판사)는 15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구씨는 양육비를 안 주는 아빠들(배드파더스, Bad Fathers)이라는 이름을 가진 온라인 웹사이트 운영자를 도와 지난 2018년 9월부터 양육비 미지급자 문아무개씨 등 5명의 실명과 사진, 거주지, 직장 등이 포함된 글을 게시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구씨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은 직권으로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시켰다. 두 번의 공판준비기일 끝에 구씨는 국민참여재판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구씨가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게재 행위에 관여했는지, 이러한 행위를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구씨가 공소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양육비 문제는 공적 관심 사안으로 비방할 목적이 부정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구씨의 이러한 주장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부정된다는 판례에 근거한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 전원과 재판부는 구씨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는 방법으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고자 지난 2018년 7월에 처음 설립된 사이트로서 현재까지 같은 목적으로 운영돼 왔다”며 “구씨와 사이트 운영자들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했을 때 제보자들로부터 대가를 받거나 이익을 취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게시된 내용을 보더라도 양육비 미지급자를 비하했다거나 악의적·공격적·모욕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며 “양육비 미지급자가 스스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사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양육비 채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함으로써 채권자의 고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를 하는 행위는 그 동기와 목적에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일부 사적인 동기가 포함되더라도 전체적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는 공소사실을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인정할 증거 또한 없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무죄 판결 이후 구씨는 붉어진 얼굴을 감싸고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고 결과에 방청객 일부도 울음을 터뜨렸다.

구씨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육비가 개인 간의 채무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보고 공익성이 인정돼 무죄 판결이 나왔다”며 “오늘 판결이 우리나라 양육비 관련법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명예훼손 처벌이 두려워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며 “이러한 걸림돌이 해소됐고, 피해자들이 용기를 갖고 양육비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는 “양육비가 개인 간 금전채권이 아닌 아동의 생존권과 연결된 문제라는 것이 인정된 판결”이라며 “국회에서 발의된 양육비 관련 법안 10여개 통과되고, 우리나라 양육비도 외국 수준으로 보호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구씨와 함께 기소된 양육비 미지급 사례 제보자 전아무개씨는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배심원도 전원 유죄 및 벌금 50만원 의견을 냈다. 전씨는 배드파더스 활동 외에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욕설이 섞인 게시물을 개인 SNS에 올려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