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정국’에 밀렸던 선거구 획정, 여전히 ‘뒷전’
각 정당 이해득실 셈법 속 분구·통폐합 두고 갈등
개정 선거법 구체적 가이드라인 부재···출마희망자들 불만 토로

14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산 정상에서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잘 치러지도록 기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4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산 정상에서 인천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잘 치러지도록 기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15 총선이 약 3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지만 선거구 획정 문제는 좀처럼 마무리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국회는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처리에 집중하면서 다른 법안들에 대한 처리에 소홀했고,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중 하나인 선거법 개정안조차도 겨우 통과되면서 선거구 획정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총선 정국’이 시작된 만큼 선거구 획정 문제를 조속히 매듭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에 대한 국회 논의는 여전히 더딘 모습이다. 게다가 각 정당들은 이해득실 계산에 따라 선거구 분구‧통폐합 등 지역 문제를 두고 갈등까지 빚고 있어 정치권에서는 선거구 획정 문제는 총선 한 달 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거연령, 비례정당 등 ‘선거룰’에 대한 교통정리도 시급하다.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 조정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대한 입법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총선 1년 전’ 법정시한 훌쩍 넘긴 선거구 획정···非현역 출마희망자 ‘난색’

선거구 획정은 법적으로 총선 1년 전인 4월 15일까지 확정됐어야 했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2(국회의원지역구 확정) 제1항에서는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24조(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제11항에서는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제25조제1항에 규정된 기준에 따라 작성되고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 선거구획정안과 그 이유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보고서를 임기만료에 따른 국회의원선거의 선거일 전 13개월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상정돼 있었고,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비율, 의원정수 등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던 만큼 법적시한 내에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한 사유는 존재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선거법 개정안 이후에도 선거구 획정 문제를 지체하고 있는 여야의 행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 논의를 선거구 획정을 염두하고 진행했던 만큼 조속히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여야는 분구, 통폐합 문제에 대한 갈등을 점화하며 오히려 선거구 획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10일 서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에서 열린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 정당 의견청취’ 회의였다. 이 자리는 지난 총선(2016년) 당시와 이번 총선의 지역별 인구 변동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기 전 각 정당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소집됐다.

지역별 인구수(선거일 15개월 전 기준)로 볼 때 분구가 예상되는 선거구는 세종시(31만6814명), 강원 춘천시(28만574명), 전남 순천시(28만150명) 등 3곳이고, 서울 강남구, 경기 군포시, 경기 안산시 등은 통폐합이 점쳐지고 있다.

선거법에서는 가장 많은 지역구와 가장 적은 지역구 인구 편차 허용 범위는 ‘2대1’이고, 이번 총선의 선거구 하한 인구와 상한 인구는 각각 13만6565명, 27만3129명 등이다.

지역별 인구수만 고려한다면 선거구 획정은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각 정당간 정치적 합의가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정당들이 집중하고 있는 핵심 쟁점은 농‧산‧어촌 선거구와 서울‧경기 선거구 중 어느 쪽을 줄일 것이냐는 문제다.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는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지도록 권고 의견을 제시한다’고 합의했다. 농‧산‧어촌 등 지역의 적은 인구수를 감안해 이들 지역의 통폐합을 하는 대신 많은 인구수가 밀집된 서울‧경기 지역의 선거구를 통폐합해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당은 협의체의 합의와 선거법 개정안 처리 등이 불법적으로 이뤄졌고, 서울‧경기 지역의 의석수는 인구 대비 가장 적은 곳으로 통폐합은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표의 등가성, 헌법상 평등 원칙 등을 기준으로 농‧산‧어촌 등 지역의 선거구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갈등은 선거구 하한 인구에 미달하는 지역이 광주, 전북, 전남 등 호남 지역에 주로 분포돼 있는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사실상 호남에서 우호적인 민심을 받고 있는 여야 4+1협의체와 비우호적인 한국당 간 의석수 확보 전쟁인 것이다.

각 정당이 이해득실 계산에 함몰돼 있는 가운데 현역의원이 아닌 출마희망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선거국 획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은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뛰어들 수 없고, 전략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현역의원들이 선거구 획정이 늦춰질수록 이른바 ‘현역프리미엄’이 극대화되는 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서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 정당 의견청취' 회의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 정당 의견청취' 회의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선거연령 하향‧예비후보자 기탁금 등 세부 내용 없어 ‘혼란’

‘선거룰’ 확정 또한 지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선거연령도 만 18세로 하향 조정된 상황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고 있어 혼란을 빚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선관위원회는 선거연령이 하향 조정된 것과 관련해 ▲초·중등학교에서 예비후보자 명함 배부 금지 여부 ▲초·중등학교에서 연설 금지 여부 ▲초·중등학교에서 의정보고회 개최 금지 여부 ▲공무원의 지위 이용 선거운동 금지 조항 등에 사립학교 교원 포함 여부 등에 대한 입법 보완 논의가 필요하다고 국회에 요청한 상태다.

선거연령이 낮아지면서 ‘젊은 층 표심’이 이번 총선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에 각 정당들은 청년 인재영입 등 전략 마련에 한창이지만, 막상 이와 관련한 룰은 확정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비례대표 후보자 기탁금 1500만원, 예비후보자 공천 탈락 시 기탁금 반환 불가 등 헌법재판소 위헌‧불합치 결정에 따라 개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개정되지 못한 선거법 개정 작업도 속도가 붙지 않으며 총선 출마희망자들의 발을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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