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책임 강화’ 대상에 건설기계 범위 협소···화물운송·예술노동자 적용 제외 구멍
책임자 처벌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서 방치···경영계는 ‘부담’

이미지=조현경 시사저널e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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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도급승인 대상이 협소하고 도급인의 책임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급 사용 대상 범위를 줄이고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 부담을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시작부터 ‘차별 없는 좋은 일터’를 국정과제로 삼고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특수고용노동자 등 보호대상 확대, 도급인의 산업 재해 예방 의무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방안 마련,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강화 등을 구체적 목표로 삼았다.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가 작업 도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이를 계기로 안전한 일터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는 거세졌고 결국 정부와 국회는 그해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전면금지, 사업장 내 근로자 안전에 대한 원청업체 책임 확대,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권 신설, 안전 및 보건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담았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구체적 내용을 정한 하위법령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하위법령에 대해 국무회의를 통과시켰다. 이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오는 16일부터 현장에 적용, 시행된다.

우선 개정 산안법 하위법령은 외주화로 인한 사고는 도급승인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이끌어낸 김용균 노동자의 일터인 발전소 하청, 철도 지하철 하청, 조선업 하청도 도급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도급승인 대상을 ‘황산·불화수소·질산·염화수소 취급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으로 한정한 것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보수, 해체 작업 등이 사업장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화학물질 폭발사고는 대부분 잔류물질이 없다고 측정돼, 작업을 실시하다가 발생한다. 2013년 대림 사일로 폭발사고의 경우도 잔류물질 제거로 작업허가서를 발급한 상황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며 “도급승인 대상을 화학물질 취급 작업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시행령에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 공장의 세정작업, 삼성반도체 불산 누출 사고 등 라인작업, 일상적 수리 정비업무 등의 위험성이 수차례 확인됐으나 도급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한 화력발전소에서 보일러 내부를 정비하는 하청노동자들 모습. / 사진=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한 화력발전소에서 보일러 내부를 정비하는 하청노동자들 모습. / 사진=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도 산업재해의 주요한 원인으로 외주화 구조를 지적하며 정부에 도급이 금지되는 유해·위해 작업의 범위 확대, 생명·안전과 직접 관련되는 업무 구체화, 원·하청 통합관리제도 적용 범위 확대 등을 지난해 11월 권고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으로 2019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됐으나 위험의 외주화 등 근본적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며 “인권위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도급금지작업이 화학물질을 중심으로 협소하게 규정돼 있어 변화된 산업구조 및 작업공정 등을 고려해 금지 범위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하청노동자 산재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생명 및 안전업무 기준의 구체화, 산재보험료 원하청 통합관리제도 확대 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법의 원청 책임 강화 대상인 건설기계 범위도 지나치게 좁다는 평가다. 시행령은 건설기계 27개 기종 가운데 4개 기계에만 원청 책임 강화를 적용했다. 현장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덤프, 굴삭기, 이동식 크레인 기계 등은 제외됐다.

산업안전보건공단과 민주노총에 따르면 굴삭기, 트럭류, 고소작업대(차), 이동식크레인, 지게차 등 5대 건설기계와 장비에 의한 사망자는 최근 5년간(2011∼2015년) 693명에 달했다. 모든 건설기계(27개 기종)로 범위를 넓히면 이 기간 사망자는 2539명으로 늘어난다. 이 기간 전체 사망자 수(5300명)의 절반에 달한다.

개정 산안법에 따라 이 법의 보호대상으로 새로 포함된 특수고용노동자 범위도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하위법령 개정안을 통해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택배원, 퀵 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건설기계 운전사 27종, 카드 모집인, 대출 모집인 등 9개 직종의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 보호조치 등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는 250만명, 직종은 50개 직종에 달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에서 빠져있다. 화물운송 노동자, 영화나 드라마 촬영현장 및 셋트 공사 등 노동자들이 제외됐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 명령 해제 절차도 졸속적이라는 평가다. 정부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을 통과시키면서 기업이 작업중지 명령 해제를 요구하면 토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해 4일 이내 회의를 열어 결정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에 최 실장은 “작업중지 명령 해제의 기준은 당연히 안전조치가 완료됐는가에 대한 확인이 돼야 한다. 그러나 경영계는 무조건 4일 이내 회의를 열어 해제명령을 내리라고 강변하더니 이제는 그 4일에 토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하라고 요구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며 “정부의 모든 민원처리 시한에는 토요일과 공휴일이 제외되도록 법령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작업중지 명령 해제는 일반 민원에 적용되는 조항도 모조리 무시했다. 이제 주말과 연휴에 걸쳐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현장의 안전조치는 불가능하게 되고, 졸속해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작업 중지 해제 심의위원회에 노동계가 요구한 노조 추천 전문가 참여 보장도 외면했다.

◇ 국회, 산재 막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2년 넘게 방치

현장에서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산재에 대한 기업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실효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에서 2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2017년 11월 고(故) 노회찬 의원과 박주민, 정동영 의원 등이 공동발의했다. 이 특별법안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이 법에 따른 안전조치의무 및 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며, 해당 법인에게도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경우 기업 경영주와 업무 관련 공무원의 처벌에 대한 하한형도 포함했다.

이 법안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산재에 대한 실질적 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또 이 법안은 산업재해와 관련한 공무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 실효성을 높이고자 했다.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감독의무 또는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직무를 유기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을 2년 넘게 방치하고 있다. 그 사이 수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다치고 죽었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CJ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군,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양,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군, tvN 고 이한빛 PD 등의 유가족 등 산재·재난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이러한 참사가 되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입법돼야 한다고 지난해 4월 28일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국회와 정부에 촉구했다.

반면 경영계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 부담과 경영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경총 한 관계자는 “도급인 책임 범위가 위험한 업무가 아닌 구내식당 등 복리후생업무까지 확대되면서 부담이 크며 인력 관리가 분산돼 오히려 실효성이 낮아질 것”이라며 “또한 정부의 작업중지 명령권도 세부적 기준이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아 남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에 대해서만 특별한 처벌 규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2001~2017년 연평균 2366명의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죽었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이 기간 산업재해 경제적 손실액은 연평균 16조7499억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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