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외교부·로펌 분업해 재판개입···헌정체제 위협”
법관탄핵 등 사후처리에 대해서도 대법원장·국회 비판

이탄희 전 판사. / 사진=연합뉴스
이탄희 전 판사. /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이 남용됐다는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 알린 이탄희 전 판사가 13일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수석 재판연구관의 무죄 판결에 대해 “형사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며 비판했다.

이 전 판사는 유 전 연구관이 이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 전 판사는 “사법농단의 본질은 헌법위반이고 법관의 직업윤리위반이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외교부·특정 로펌 등이 분업하며 재판에 개입한 사건으로, 우리 헌정체제를 위협하고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농락한 사건”이라고 했다.

이 전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국회에 대한 지적도 했다. 그는 “대법원장이 엄격한 법관징계 등 직업윤리 수호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법관탄핵 등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며 “선진국들이 모두 취하는 방식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어려운 것이냐”고 반문했다.

특히 “대법원장께서 외부위원 참여하는 자체조사위를 설치하지 않고 검찰 수사에만 기댄 일과 법관징계에 관해 대규모 면죄부를 준 일이 다시 한 번 통렬하게 다가온다”고 한탄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사법개혁의 흐름에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대법원장의 무책임함, 20대 국회의 기능 실종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형사판결로 사법농단이 위헌성과 부정함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전 판사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로 발령받은 뒤 당시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항의하며 사직서냈고, 이후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뤄지며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민낯이 드러났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연구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전 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진료를 맡았던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특허소송 진행 상황을 재판연구관에게 요약하라고 지시해 ‘사안요약’ 문건을 만든 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상고심 사건의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와 판결문 초안 등을 유출한 혐의, 대법원 재직 시절 취급했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에 수임한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모든 혐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