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GS건설 배터리 리사이클 사업 추진···구미엔 LG화학 양극재 공장 설립 계획
구조적인 한계 드러낸 지역경제···‘포스트 반도체’ 배터리로 새 물꼬 틀지 관심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대표적인 수출 품목을 생산하며 ‘산업도시’ 역할을 해 왔던 도시들이 잇달아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경상북도 포항과 구미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이들 두 도시는 ‘제2의 반도체’로 일컬어지는 배터리 등 소재사업 육성에 적극적인 상황이다.

포항은 규제자유특구지역에 GS건설의 배터리 재활용(리사이클) 사업을 유치했다. 중소기업벤처부와 GS건설이 체결한 투자협약에 따르면, GS건설은 향후 3년간 포항 영일만 4산업단지 일대에 토지매입비 180억원을 비롯해 배터리 재활용 생산공장 건설비 300억원, 기계설비 구축비 520억원 등 총 1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규제자유특구지역이란 지난해 4월 도입된 제도로, 규제 없이 혁신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포항이 소재한 경북을 비롯해 △강원 △대구 △전남 △부산 △세종 등 7개 지역이 1차 특구지역으로 선정됐다. 당시 경북도는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관련 특례를 획득했다. 도내에서는 포항이 5600㎡ 규모의 특구지역으로 선정됐다.

포항은 국내를 대표하는 철강산업 중심지다. 오징어 잡이 선박들이 주로 정박하는 어항으로 꼽혀 온 까닭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수산업으로 꾀 명성을 날린 도시였다. 이를 근간으로 1949년 시(市)로 승격됐다. 1960년대 후반 포항제철소가 건립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구가 유입됐다. 포항제철(포스코)의 성장과 함께 도시도 급속도로 팽창했다.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며 포항 내에서는 철강산업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철강산업과 지역사회의 경기가 유사한 사이클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뛰어드는 등 온갖 시도를 해 왔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지난해 규제자유특구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배터리 거점 도시로의 변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지난 9일 포항 종합운동장에서는 포항 규제자유특구 GS건설 투자협약식이 개최됐다. 이날 협약식에는 △박영선 중기부 장관 △임병용 GS건설 부회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등 포항 규제자유특구 관련 이해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했을 정도다. 이날 문 대통령은 “그동안 철강이 ‘산업의 쌀(米)’이었다면, 배터리는 미래 ‘산업의 쌀’이 될 것이다”며 “포항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폐배터리 사업은 전기차에 쓰인 폐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재사용(Re-use)’하는 방식과 폐배터리에서 사용 가능한 소재를 분리하는 ‘재활용(Recycle)’ 방식 등으로 나뉜다. 포항에서는 이 중 리사이클링 방식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사용된 배터리에서 니켈·코발트·망간 등 핵심 소재를 분리하는 사업은 배터리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대두되는 분야다. 중국·일본 등에서는 이미 관련 산업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GS건설이 해당 분야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주요 중소기업들의 입주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입주가 결정된 에코프로GEM 등과 같은 소기업들이 배터리 해체 등 기초작업을 실시하면 이곳에서 모아진 광물질을 GS건설 등과 같은 대형업체들이 분류 및 정제하는 방식으로 산업군 전반이 선순환 구조를 띨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대두된다.

지난 9일 포항 규제자유특구 GS건설 투자협약식. 왼쪽부터 이강덕 포항시장,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문 대통령,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사진=연합뉴스
지난 9일 포항 규제자유특구 GS건설 투자협약식. 왼쪽부터 이강덕 포항시장,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문 대통령,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정부 주도 아래 산업도시로 성장한 구미도 배터리를 침체된 지역 경기를 타개할 돌파구로 삼으려 한다. 1969년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된 이래 이곳에서는 섬유 등 경공업부터 전자·반도체 등 산업들이 꾸준히 육성됐다. 포항과 더불어 경북 경제의 ‘양대 축’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1970년대부터 시대별로 한국의 수출 주력 품목은 변화했지만, 구미에서 생산되지 않은 품목을 오히려 손에 꼽아야 할 정도로 ‘대표적인 수출전진기지’였다.

다만 구조적 문제를 지녔다. 연구개발 등이 이뤄지는 거점이 아닌 조립·생산 등에 초점이 맞춰진 노동집약적 전진기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동남아 지역으로 중소기업들이 빠져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이 빚어졌다. 삼성·LG 등 대기업들도 해외 생산기지 구축이 완료되면서 구미공장 일감을 줄여나갔다. 일감이 줄어들자 자연히 일자리도 줄어들게 됐다.

지역 관계자는 “인접한 대구·김천 등에서 출퇴근 하는 인구 비중이 높아 구미에서 돈을 벌고 소비는 다른 지역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공장이 문을 닫고, 대기업 일감과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지역경제가 더 큰 타격을 입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구미시는 융합형 미래 신산업을 집중 육성해 재도약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로봇 관련 국책과제 사업 수주와 국방 부품 국산화 등을 바탕으로 전진기지에서 해당 산업을 주도하는 거점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셈이다. 더불어 줄어든 일자리를 끌어올리는 노력은 배터리를 통해 가능해질 전망이다. ‘제2의 광주형 일자리’로 평가받는 이른바 ‘구미형 일자리’ 추진이다.

광주형 일자리란 지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고안된 사업이다. 현대자동차가 업계 절반 수준의 임금만 지급하고, 정부·지자체가 이를 보전하는 방식이다. 광주광역시는 현대차와 이 같은 조건의 협약을 체결하고 공장 유치에 성공했다. 구미도 비슷하다. LG화학이 투자금 전액을 조성하고 지자체가 부지 및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LG화학은 구미 국가산업5단지 내 6만여㎡ 부지에 500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양극재는 음극재·전해질·분리막 등과 더불어 배터리를 구성하는 4대 원료 중 하나다. 통상 배터리 재료비의 40%를 차지한다. 계획대로 오는 2024년 공장가동이 정상화될 경우 연간 6만톤의 양극재가 생산된다. 약 1000여명의 직간접 고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구미시 관계자는 “대기업의 공장 이전이 본격화됨에 따라 실업률이 상승하고 고용환경이 악화되는 등 지역 경기가 상당히 위축되던 상황”이라면서 “그동안 공장 설립 등에 대해 LG화학과 이행 논의가 계속 이어져 왔으며, 최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속도를 낼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LG화학 외에도 배터리 소재 관련 사업체들이 이미 구미에 정착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장기적으로 배터리 산업 거점으로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며 “지역사회도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조속한 사업 진행을 희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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