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해외 주요국, 양육비 미지급 시 면허증 취소·정지
국회입법조사처 “‘부당결부금지 원칙’ 위반 해소돼야 도입 가능”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 2018년 10월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 2018년 10월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육비 지급률이 30% 미만인 국내 상황에서 지급률을 높이기 위한 제재 조치로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자는 대안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등 해외사례를 근거로 한 주장이지만,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등 법률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10일 국회와 법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양육비가 미지급될 경우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방법으로 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 등 여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민사집행법을 준용하는 ‘가사소송법’이나 ‘민사소송규칙’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해야 해서 그 실효성도 낮고 강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이혼·미혼 한부모 2039명 중 양육비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3.1%에 달했다. 양육비이행법을 근거로 개원한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이용하더라도 지급률은 31.9%에 불과했으며, 양육비 청구 소송을 한 경우 7.6%, 이행확보 절차를 이용한 경우 8%만이 양육비를 받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과 현행 제도를 보완하고자 국회에서는 강화된 제재 수단으로 양육비 채무자의 운전면허 등을 취소 및 정지하도록 하는 3건의 법률안이 발의된 상태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초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며, 정 의원이 추가 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있다. 개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 채무자의 운전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고, 출국금지까지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도 면허 제재와 관련된 제도를 시행 중이다.

1996년 미 연방정부는 법 제정을 통해 모든 주 정부에게 양육비 이행강화 조치의 일환으로 면허증 제재 절차를 마련하도록 했다. 그 결과, 1998년 당시 미국의 모든 50개 주가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각종 면허증 및 허가증 제한, 정지, 취소 등 법적·행정적 조항을 마련하게 됐다.

이러한 조치는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개인의 행위가 국가에 의존적인 피부양자를 발생시키고, 이는 피부양자를 예방 또는 감소시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공공평화를 위협한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 한부모 가족을 구제하는 데 국가의 의무만을 강조하면, 귀하게 쓰여야 할 세금이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됐다. 특히 면허증 제재 조치는 급여로부터 양육비를 징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영업자일 경우 더욱더 효과적이다.

캐나다도 양육비를 지속적으로 체납하면 여권을 비롯한 각종 면허 발급이 거부된다. 영국, 노르웨이도 양육비 지급률을 높이기 위해 유사한 제재조치를 갖고 있다.

/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형사처벌의 의의와 과제’,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 출처=국회입법조사처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형사처벌의 의의와 과제’,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 정지 등 제재를 도입하려면 걸림돌이 적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긴급하게 극복해야 할 법률적 쟁점으로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을 꼽았다.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보고서 ‘양육비 이행 강화 방안’에서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양육비 미지급 제재 수단으로 운전면허 정지 및 취소는 부당결부금지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짚었다.

부당결부금지 원칙이란 행정기관이 행정작용을 함에 있어 상대방에게 그것과 실질적 관련성이 없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그 이행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교통법규 위반을 이유로 비영리 단체허가를 거부하는 처분은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판례가 있다.

즉, 양육비 미지급과 운전면허 제재의 부당결부가 해소되려면 행위(양육비 미지급)와 행정작용(운전면허 제재) 간의 실체적 관련성이 밝혀져야 한다.

허 조사관은 “양육비를 납부하지 않은 행위와 운전면허 정지 및 출국금지의 상관성은 운전 및 출국 행위가 양육비 지급 능력을 증명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검토해 볼 수 있다”며 “양육비 미납자를 제재하기 위한 운전면허 정지·취소 및 출국금지 조치는 양육비 이행강화라는 행정작용 목적의 범위 내에서 부과된 것으로 볼 여지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또 “면허 제재 및 출국금지 조치가 양육비 미납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는 점에서 미국 사례와 같이 양육비 완납, 지급일 약정 등의 요건 준수에 따라 임시면허증 발급 또는 제재 조치 유예 기간 부여 등의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부담적 행정행위의 경우 대상자에게 사전에 통지하고 상대방의 의견진술을 듣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를 양육비 지급 이행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효율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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