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의 명쾌한 설명과 단 하나의 사고력 문제가 학생의 장래를 바꿀수 있다’는 생각으로 “수학도둑”의 수학 콘텐츠를 집필한 여운방 박사(시스템수학연구회)에게 수학 학습에 대해 물었다.

사진=지다영, 김재경

 

지난해 11월 MBC <공부가 머니?>에서는 배우 임호의 딸이 수학을 싫어해 학습지 교사가 오면 숨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에 교육 컨설턴트는 수학 학습 만화 <수학도둑>을 추천했고, 3개월뒤 임호의 딸은 해당 도서를 읽으며 수학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13년간 73권의 시리즈가 출간된 <수학도둑>은 수학이 생각하는 힘을 숙련시키는 과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재미있는 스토리와 친근한 그림으로 수학을 ‘어렵고 복잡한 과목’이 아닌 ‘흥미로운 과목’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수학 학습 만화다. 1단계 기본편(1~30권), 2단계 심화편(31~45권), 3단계 창의편(46~60권), 4단계 종합편(61~현재 73권)으로 구성됐다.

<수학도둑>의 수학 콘텐츠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대학원 석사 및 박사 학위 취득, 카이스트·한국산업기술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현재 시스템수학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여운방 박사가 집필했다.

그는 참고서도, 문제집도 아닌 이야기책을 읽으며 수학이 무엇인지, 수학의 영역이 어떻게 구성되고 각각 어떻게 연계됐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핵심엔 머릿속에 수학의 개념을 정리해 넣은 ‘생각의 서랍’이 있다.

<수학도둑>의 수학 콘텐츠 집필을 어떻게 시작했나요?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친근하게 수학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수학 학습 만화의 콘텐츠 집필을 제안받았습니다. 그때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학년별·영역별·능력별로 내용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기본편, 심화편, 창의편, 종합편으로 구분한 수학 학습 시리즈를 구성할 수 있었죠. 그렇게 <수학도둑> 1권이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13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 애독자가 많을 것같은데요.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 등 수많은 애독자를 만났죠. 그중에서도 한 식당에서 만났던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와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는데, 한 소년이 물이 담긴 컵을 식탁 위에 올려놓기에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수학도둑> 머리말에 그려진 제 캐리커처를 보고 저를 알아봐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것이 인연이 돼 소년과 대화를 나눴는데,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와 선행학습을 한친구들을 보고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했어요. 그래서 “주변 친구들을 보고 기죽지 말고 순서대로 공부하면 된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는 조언을 했죠. 몇 개월 뒤 소년은 학생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제조언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소년을 보고 굉장히 뿌듯했죠.

MBC <공부가 머니?>에서 수학을 싫어하는 어린이가 <수학도둑>을 보고 수학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수학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경험들이 수학을 멀리하게 만드는 것이죠. 학습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사, 학생, 교재입니다. 또 지도 방법, 학습 방법, 평가 방법이 영향을 끼치죠. 6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해 수학을 어렵게 느끼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수학 선생님의 잦은 꾸지람으로 수학이 싫어지기도 하고, 과도한 선행학습이나 계산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다가 지치기도 합니다. 또 취약 부분에 대한 보강 없이 학습이 진행돼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생깁니다.

학부모는 자녀를 ‘수포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킨다고 교육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와 소통하며 학습 진도는 잘 따라가고 있는지, 어떤 것이 어려운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수학은 위계성이 강한 과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영어의 경우 ‘boy’를 먼저 배우든 ‘girl’을 먼저 배우든 상관없지만 수학은 덧셈을 배우지 않고 곱셈을 배울 수 없고, 일차방정식을 모르면 이차방정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건물의 1층을 짓지 않고 2층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수학 과목의 특성을 인지하고, 취약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강 학습을 하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학습 지도 방법이 궁금합니다. 학습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우선 수학을 친근하게 느끼고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의 역사나 실생활과 밀접한 예, 퀴즈나 퍼즐 등의 문제로 흥미를 유발하는 거죠. 그다음엔 수학의 개념을 정리합니다. 용어에 대한 개념을 우리말로 이해하고 때로는 한자나 영어로 된 용어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학의 영역이 어떻게 구성되고, 서로 어떻게 연계되는지 파악해야 심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여행 가방을 싸는 것처럼 개념의 종류를 나누고 그에 따른 상위개념을 차곡차곡 쌓는 거죠.

수학의 마인드맵을 그려 견고하게 기본기를 쌓는 것이 핵심이군요. 무조건적인 선행학습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외우거나 답을 맞히는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제목, 목차, 머리말 순으로 보고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파악하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배운 것을 적재적소에 꺼내 활용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지식을 쌓을 수 있죠. 수학 교육의 목적은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초등학교의 수학을 ‘셈본’이라 불렀습니다. ‘셈’이란 수를 세거나 연산한다는 의미와 의사 결정을 하거나, 해결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어쩔 셈이냐?”라는 말에서 쓰이는 ‘셈’이두 번째 풀이에 해당하죠. 수학 역시 계산하는 과목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과목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수학이 도움이 되나요? 수학은 우리 삶의 도구이자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됩니다. 우리는 생각을 모으고, 이해하고, 정리한 후 표현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내가 하던 생각을 멈추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죠. 이는 곧 대학 입시를 위한 계산 위주의 수학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 시대에 수학의 기능과 역할은 더욱더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수학의 선형변환(벡터와 행렬) 영역과 확률·통계 영역을 이용한 결과죠. 그런데 최근 국내 교과 과정에서 집합과 벡터, 행렬이 제외된 점은 안타깝습니다.

박사님의 교육철학이 궁금합니다. 초·중학생이 쉽고 재미있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끔 개인별 맞춤 수학 학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20년간 한길을 걸어왔습니다. 길고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수학의 재미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속담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떡잎부터 잘보살펴야 될성부른 나무가 된다.’ 어떤 아이라도 뒤떨어지게 놔두면 안 됩니다. 누구든 잘보살피면 큰 재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여운방 박사가 조언하는 학부모 필수 지도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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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계산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수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돕는 <수학도둑>은 최근 73권이 출간됐다. 부록 워크북에서는 문제및 풀이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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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계산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수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돕는 <수학도둑>은 최근 73권이 출간됐다. 부록 워크북에서는 문제및 풀이를 제시한다.

1 교과서와 익힘책을 빠짐없이 공부한다 자녀에게 교과서를 충분히 이해한 후참고서나 문제집을 다루도록 순서를 명확히 정해준다.


2 어려운 문제와 귀찮은 문제를 구별한다 수많은 계산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면 오히려 수학과 멀어질 수 있다. 자녀가 어려운 문제를 통해 문제 해결 과정을 생각하며 스스로 도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3 선행학습보다는 다지기 학습(선수학습)에 힘을 쏟는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은 탑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앞으로 배울 내용은 개괄적으로 연관시킬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4 취약 부분을 보강하라 자녀가 현재 어렵게 느끼는 영역을 보강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진단평가를 받고 적시에 보강 학습이 이루어져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5 수학 도서를 추천하라 수학 개념이 실생활에서 활용된 예나 개념을 이해할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담긴 도서를 통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이는 창의적,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우먼센스 2020년 01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김지은 사진 지다영,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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