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14일 외교장관회담서 파병 논의 가능성···미국 요청에 정부 호르무즈 파병 압박
강경화 “미국과 입장 반드시 같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커지면서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국내 외교 및 안보 전문가들은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로나 우리 선박 보호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이란에 대해 사전양해 작업을 구하는 등 신중하게 대처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전날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 기지 공격과 관련해 즉각적인 군사적 재보복 대신 경제제재 입장을 밝혔다. 전날 이란은 혁명수비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한 미군의 공습에 따른 사망으로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미국은 지난해 6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유조선에 대한 피격사건들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에 민간선박 보호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동참을 요청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지난 8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에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을 바란다고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파병과 관련해 한국의 어느 정도 수준의 기여를 바라는가 라는 질문에 “한국의 결정을 우리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이 제공하고자 하는 수준의 지원은 그것이 어떤 수준이 되든 간에 그것을 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자료=연합뉴스,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 자료=연합뉴스,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이에 안보 및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서는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9일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해선 안된다. 후방 지원도 안 된다”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해상로 보호나 선박 보호 활동을 하게 되더라도 이란에 반드시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하지 않더라도 한미동맹에는 문제가 없다”며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 즉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동맹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에너지 수송로는 우리도 공동으로 지킬 책임이 있으나 미국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살해한 것은 명분이 없다. 미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와 관련해 임박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있었다는 증거를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파병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홍 위원은 “한미상호방위 조약에는 ‘태평양 지역’에서 일방이 침략을 받았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지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중동은 태평양 지역이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상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현실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보 전문가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 압박이 큰 것으로 안다”며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국이 파병 자체를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파병 방식을 직접적 전투병 지원이 아닌 선박 통제 등 간접 지원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과 이란은 당장의 전쟁은 피했다. 우리 정부는 상황을 봐가며 파병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게 되면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그 때는 파병을 해야 한다. 이란이 지금 단계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진 않겠지만 미국의 제재가 심해지거나 미국과 대화가 결렬되면 봉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나왔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이란이 주변국들의 수출을 막을 수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미국과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과 관련해 “미국의 입장과 우리 입장이 정세분석에 있어서나 중동지역 나라와 양자 관계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란과도 오랫동안 경제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으로서는 인도지원, 교육 같은 것은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강 장관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 항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러 가지 옵션을 계속 고려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강경화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오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회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외국에 군대를 파견하려면 국회 비준과 동의를 받아야한다”며 “이번 사안은 지난 이라크 파병 때와 다르다. 이번에는 테러에 대한 대응이 아닌 미국의 보복 성격이기에 파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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