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보복에 美 트럼프 ‘경제제재’ 선택···일촉즉발 위기 면했지만 韓 경제 영향 우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상황 악화 우려···“전 세계 경제 하락 국면 이어질 듯”

미국과 이란이 최근 들어 전시 상황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면서 반등 모멘텀 마련이 절실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격 대신 ‘경제제재’를 선택하면서 일단 파국은 면하게 됐지만, 중동정세 불안정이 지속돼 세계 교역이 위축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직·간접적 피해는 불가피하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일촉즉발 위기 국면으로 치닫자 우리 정부는 이례적으로 지난 6~7일 이틀간 중동리스크 모니터링 및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미·이란 갈등 상황과 함께 국내 경제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은 적다. 특히 미국이 대(對)이란 경제제재에 나서면서 지난해 5월 우리나라의 이란산 원유 수입이 금지돼 당장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도 미·이란 사태로 인한 외화 익스포져(위험노출액)도 400만달러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란이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국내 경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4%로 제시하는 등 반등 성공에 기대를 내비치고 있지만, 미·이란의 악영향이 미치면 당장 1분기 경제 상황은 하락세로 전환될 수 있다.

우선 IMF,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같은 글로벌 경제기관들은 올해 세계경제, 특히 신흥국 경제가 지난해보다 개선되면서 한국 경제도 덩달아 성장률이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IMF는 지난해 한국 경제는 2.0% 성장에 이어 올해 2.2%로 성장률이 반등할 것으로 봤고, OECD는 지난해 2.0%, 올해 2,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도 작년 한국 경제성장률 2.0%에서 올해 2.3%로 상향 전망해 OECD와 동일한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기획재정부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은행(WB)는 9일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직전 전망치보다 0.2%p(포인트) 내려 2.5%로 하향 조정했다. WB가 이번 성장률 전망치에 미·이란 분쟁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만큼, 향후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더 떨어질 수 있다.

WB이 평가한 바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작년보다 0.1%p를 더 내렸다. WB는 보고서를 통해 “인적자본·실물 투자 촉진, 기술 도입과 혁신을 위한 기업 역량 강화, 성장 친화적 거시경제 및 제도적 환경 조성 등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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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관 2020년 한국 경제성장률 및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 / 자료=국제통화기금(IMF), 표=이다인 디자이너

결국 올해 경기 반등을 노리는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4%의 근거가 ‘세계 경제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미·이란 사이서 확전 자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란이 미군 기지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행동 대신 경제제재를 택해 군사적 긴장은 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이란의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보복 공격 이후 미국의 향후 대응에 따라 사태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이로써 미국과 이란간 충돌이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관련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중동정세가 내내외 경제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은 우리 경제의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 소비자물가 등 국내 물가의 변동성을 확대시켜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 석유류 제품, 교통, 전기·연료 등도 유가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실제 작년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가격이 떨어지면서 저물가 흐름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9일 ‘최근 중동정세 불안에 대한 해외시각 점검’ 보고서에서 “최근 미국 경기가 유가 급등 후 침체했던 세 차례에 비추어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 수준으로 상승하면 증시가 약세로 돌아서고 경기침체가 초래될 우려가 있다”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아시아에도 부담이 되면서 세계경제가 ‘얼음 위의 불안한 회복’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중동 불안이 단기·제한적 이벤트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중동 내 반미 감정 고조, 11월 미국 대선 등으로 중동 정세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의 경제연구기관 캐피탈이코노믹스는 같은 날 ‘솔레이마니의 죽음과 미국·이란의 전쟁 위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란의 경제 붕괴만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0.3%p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피해액 추정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보고서는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뛰어오를 것”이라며 “유가 급등은 OECD회원국들의 물가상승률을 3.5~4.0%까지 끌러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7일부터 석유수급 상황 등 일일점검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수급 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원유 수입, 유조선 동향 등 수급 상황과 국제유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매일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금융권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대 중동 익스포져 등을 점검하고, 금융·외환시장 불안 발생 시 시장 안정조치를 수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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