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전원 키코 분쟁조정안 검토 기한 연장 신청
배임 아니라는 금융당국 발언에도···은행권 배임 우려 여전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불완전판매 배상 결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불완전판매 배상 결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비슷한 시기에 분쟁조정을 진행 중인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를 두고 은행들의 엇갈린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다. 두 사례는 은행의 불완전판매로 논란을 빚은 파생상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모두 금융감독원에서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은행과 해당 파생상품 투자자 간 분쟁조정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DLF 사태와 관련해선 은행이 신속한 배상을 결정한 반면 키코 사태는 배상 수용 결정을 미루면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마련한 키코 분쟁조정 결정서를 받은 은행 6곳(신한·KDB산업·우리·씨티·KEB하나·대구은행) 모두 금감원에 분쟁조정안 검토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금감원은 키코 사태에 불완전판매에 따른 은행의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피해를 본 기업들에게 최대 41%를 배상할 것을 결정했다.

지난 20일 금감원은 조정결정서를 피해기업과 은행에 전달한 바 있다. 규정상 조정안이 접수된 후 20일 이내인 이날까지 수용, 불수용, 연장 신청 등 의사를 밝혀야 하지만 은행들이 전날까지 수용 여부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금융당국은 은행과 기업 양측 모두에게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더 주기로 결정했다.

반면 키코와 마찬가지로 파생상품과 일부 불완전판매 문제가 인정된 DLF 사태와 관련해선 은행들이 분쟁조정안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전국 영업본부장 회의에서 “금감원 분쟁조정안을 적극 수용하고 DLF 배상 관련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KEB하나은행 역시 지난달 이사회에서 지성규 하나은행장이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따른 신속한 배상으로 책임 있는 자세와 손님 보호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유사한 두 사안을 두고 은행의 온도차가 드러나는 데에는 키코가 DLF와 달리 ‘배임’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10년)가 지난 키코 사태에 대해 분조위 배상 결정을 받아들인다면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DLF와 달리 키코는 소멸시효가 지났고 대법원에서 상품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며 “키코 배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선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데 만약 이사회에서 배상 수용을 의결하면 주주들이 경영진에게 배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감독원
2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감독원

반면 금융당국은 은행이 키코 분조위 배상을 수용하는 게 배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2월 23일에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은행에서 배임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객에게 권고한 대로 배상을 하는 것은 은행에는 금전손실이지만 반면 이를 해결하는 것은 은행 평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상대는 고객”이라며 “이는 경영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고 배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이러한 발언에도 은행들의 배임 우려는 잦아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과 금감원의 분쟁조정 중 대법원의 판결을 우선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법원은 최고 사법기관이지만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은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이기 때문”이라며 “사법기관도 아닌 금융당국이 배임이 아니라고 해서 주주들도 배임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키코 분쟁조정의 결과가 단순히 키코 사태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향후 다른 상품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만큼 배상 여부에 보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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