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이 가해자 및 피해자 동시 변호하는 상황···‘윗선’ 수사 첫 고리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7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7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신(63) 전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으나, 변호사 선임문제로 조사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4부(부장검사 이복현)는 7일 오전 김 전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김 전 대표 소환은 검찰이 지난해 9월 삼성물산 등지를 압수수색하며 합병 의혹 수사를 공식화한 이래 첫 사장급 인사를 불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검찰이 삼성그룹 수뇌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검찰은 김 전 대표를 상대로 2015년 합병 직전 삼성물산 회사가치가 떨어진 경위와 그룹 차원의 개입 여부 등을 물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사는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김 전 대표와 함께 온 변호인이 삼성물산 법인의 대리인도 맡고 있어 변호인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의혹의 피해자 입장인 삼성물산과 가해자 입장인 김 전 대표를 동시에 대리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검찰은 김 전 대표가 새로 변호인을 선임하는 대로 재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합병당시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어 내기 위해 김 전 대표 등 ‘삼성 윗선’이 고의로 삼성물산이 해외공사 수주 사실을 뒤늦게 알리고, 신규주택 공급량을 축소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삼성물산은 지난 2017년 5월13일 2조원대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수주 등 회사 실적을 공시하지 않다가 합병 결의 이후인 같은 해 7월말 공개했다. 삼성물산은 또 합병 이전인 지난 2015년 상반기 신규주택 공급량이 300여 가구에서 합병 이후 1만994가구로 바꿨다.

검찰은 이러한 행위들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렸다고 의심한다. 합병 당시 합병비율은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로 제일모직의 주당 가치가 삼성물산의 3배에 달했다.

사장급 인사인 김 전 대표를 상대로한 수사가 그룹 수뇌부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당시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등도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검찰은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1년 2개월간 관련 수사를 진행해 왔다. 합병·승계 의혹 수사의 단초가 된 삼성바이오의 회계사기 혐의는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김태한 대표이사 등의 사법처리만 남겨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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