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규격 어기고 ‘찐 어묵’ 대신 ‘튀긴 어묵’ 사용
“유통기한 3년 담보 못 해···하자보수 노력도 안 해”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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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식량에 들어가는 어묵의 종류를 다르게 사용한 군납품업체에게 6개월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한 처분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바뀐 재료 자체가 품질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전투식량 전체의 품질을 갖추지 못했고, 해당 업체가 하자보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은 군납품업체 A사가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6개월간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A사는 지난 2016년~2017년 총 4차례 방위사업청과 22억원대 전투식량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45만여개 수량을 납품하면서 국방규격과 달리 ‘찐 어묵’ 대신 ‘튀긴 어묵’을 사용했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지난해 2월 ‘전투식량에 원자재(어묵) 규격불일치 제품을 사용한 하자가 있다’고 A사에 통보하고, 하자조치계획 제출을 요구했다. 계약특수조건 제20조에 따르면 하자복구는 대체납품(교환)이 원칙이고, 보수가 가능하다.

방위사업청도 ‘하자복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불이행으로 계약을 해제하고,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A사에 통보했다.

이에 A사는 여러 차례 국방기술품질원에 ‘품질에 아무 문제가 없어 하자판정에 동의할 수 없다. 문제가 된 어묵을 선별해 찐 어묵으로 교체하는 보수작업을 하겠다’는 하자조치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국방기술품질원은 ‘튀긴 어묵만 선별해 찐 어묵으로 교체하는 것은 대체납품과 보증기간 재(再)부여에 부합하는 하자조치가 아니다’며 A사에 재차 하자조치계획 제출을 요구했다.

계속된 하자조치 요구에도 A사가 응하지 않자 국방기술품질원은 ‘하자처리가 불가하다’는 내용을 통보했고, 방위사업청도 이에 근거해 6개월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내렸다.

A사는 법원까지 이 사건을 끌고 갔다. A사는 재판과정에서 “튀김 어묵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국방규격상 사용할 수 있는 ‘특수 포장 어묵’의 품질기준을 충족했고, 전투식량 자체가 품질검사에서 합격했기 때문에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하자가 있더라도 주재료에서 어묵이 차지하는 비중이 2.19% 미만이다”며 “전투식량 전체를 폐기하고 대체납품을 하는 조치계획은 부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엄격한 기준으로 방위사업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전투식량은 유통기한이 3년인 제품으로 장기간 보관되는 과정에서 산패나 변질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국방규격에 여러 어묵의 종류 중 찐 어묵과 특수포장 어묵에 한해 사용할 것을 명시했다고 해석된다”며 “사용된 튀김 어묵이 찐 어묵이나 특수포장 어묵의 품질 기준을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전체) 제품의 품질이 담보된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전투식량은 계약에서 정한 규격에 부합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해 그 규격이 계약 내용과 다르고, 이로 인해 계약에서 예정한 품질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원고(A사)는 제출한 하자조치 계획에서 ‘어묵만 선별해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주재료 8~10가지가 혼합된 상태에서 어묵을 정확하게 선별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일부 식단의 경우 어묵이 11.54% 포함돼 있다”며 “하자조치 계획이 적절하다고 볼 수 없고, 적절한 조치계획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자보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원고가 적절하지 못한 하자조치계획을 고수하는 동안 전투식량 일부가 3년의 유통기한이 지나 하자보수가 불가능하게 됐고, 이는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염려가 있다”며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전투식량은 군 장병의 전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물품이고, 원고는 약 1년 6개월에 걸쳐 약 22억원의 계약금액에 해당하는 45만여개의 전투식량을 육군, 공군, 해병대에 남품해 그 규모가 상당하다”며 “그럼에도 하자보수를 이행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을 비롯한 군의 행정력이 상당히 소요돼, 국가안보 및 국민의 안전과 같은 공익을 저해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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